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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 일요일, 다섯 번째
01:57 드디어 도착했다. 집 떠난 지 19일만이다. 오늘 국토일주 최종 목적지인 양양터미날이다. 아, 다왔다.
핸드폰을 꺼내 양양터미날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데 손에 힘이 없으니 자꾸 흔들린다. 몇 번을 망치고 나서 그 중 가장 크게 웃은 얼굴사진을 첨부해서 SNS에 글을 올렸다. 사진만 보면 정말 아주 멀쩡한 상태로 보인다. 정말이지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닌 거다.
국토일주 19일차, 현재시간 6월 19일 새벽 1시 59분. 동부종주 최종 목적지인 양양터미날 도착 엄지척, 국토일주 피날레다.오늘 강릉에서 양양까지 60킬로미터 마무리.가민GPS는 50킬로미터 좀 넘는 거리로 기록.
02:34 목적지에 도착하니 담담해 진다. 터미날 바로 옆 편의점에 거의 기다시피 들어가 도시락을 샀다.
부스러지는 밥알들을 허겁지겁 목구멍에 쑤셔 넣으면서 핸드폰으로 양양에서 서울경부고속터미날로 가는 첫차를 검색해 보았다. 아침 6시 5분 발 9시 10분 도착하는 차편이 있다. 반포터미날에 도착한 다음 오전 10시까지 여의도 한강 반포대교까지 이동하면 마라톤 카페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03:06 정신이 몽롱하다. 시간을 보니 새벽 3시가 넘었다. 버스 시간까지 3시간도 남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아침 6시까지 버틸까 하다가 그래도 누워서 기다리는 것이 백 배 올바른 선택이라 생각해서 제일 허름해 보이는 여관에 찾아 들어가 새벽5시 모닝콜을 부탁한 다음 씻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05:00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전화벨이 울린다. 눈이 안 떠지는 바람에 한참을 더듬어 전화를 받았다. 모닝콜이다. 일어나야 하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양양의 첫 아침을 이렇게 맞이 하다니.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다. 양말을 벗으려는데 피와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기어서 욕실에 들어 간 후 뜨거운 물을 받아 발을 담그고 조심스럽게 양말을 떼어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어느 정도 체력이 회복되는 듯 하다. 다시 기어 나와서 습관처럼 배낭을 싸고, 물을 가득 채운 뒤 여관 문을 나섰다.
06:00 양양터미날, 버스를 탔다. 황금송이와 연어의 고장, 양양에서 아무 것도 못 먹어 보고 가다니 오호통재(嗚呼痛哉)라. 후일을 기약하며 떠난다. 안녕 양양.
09:00 언제 잠들었는지 징징 울리는 핸드폰 울림에 잠이 깼다. 마라톤 동호회에서 온 연락들이다. 여기가 어딘가 창 밖을 내다보니 벌써 서울 입성이다. 반포터미날에 도착, 버스에서 내리는데다리가 안 움직인다. 오전 10시까지 마포대교 남단까지 뛰어 가서 마라톤 카페 회원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이런 낭패다.
09:15 다리를 질질 끌며 한강 방면으로 가고 있는데 마라톤114 카페 원년멤버인 자카리아님한테 연락이 왔다. 반포터미날로 마중 나오겠다고 한다. 잠실팀과 같이 반포대교 남단에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상태가 어떠냐고 물어 본다. 힘들다고 난 못 뛴다고 말하고 있는데 얼마 안 있어 자카리아님이 저 멀리서 뛰어 온다. 그 순간 갑자기 다리가 움직이며 뛰어진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있나. 너무 반가운 사람을 보면 고통을 잊는다. 같이 사진 찍는 것도 잊은 채 부둥켜 안고 감회를 나눴다.
09:19 반포대교 남단에 도착하니 중랑천팀, 의정부 유사인팀, 송파연합팀 카페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야말로 감격 그 자체다. 한 분 한 분 반갑게 악수하고 다같이 달려서 여의도로 간다. 저 멀리 마포대교가 보인다.
10:00 서울 여의도 마포대교 남단 최종 종착점 도착. 인천, 부천, 시흥팀까지 각 지역에서 모인 거의 60여 명에 달하는 마라톤카페 회원님들이 국토일주 완주를 반겨준다. 이렇게 국토일주는 공식적으로 마감이다. 나 좋아서 한 국토일주를 이토록 응원해주니 그저 황송할 뿐이다.
13:00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카페 회원님들과 어울리다가 어느 순간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조용히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라디오에서 임백천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소리가 들린다.
오후 1시, 택시는 미끄러지듯 도착했다.
19일만에 돌아온 신길동은 황금색 햇살로 눈이 부셨다. 집으로 가는 동네 골목길이 이렇게 생겼었구나. 반갑다. 애들이 뛰어 나온다. 뒤에 아내도 보인다. 아내의 미소가 정말이지 너무 싱그럽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집 대문 열리는 소리가 반갑다.
옷을 벗고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기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에 몸을 맡긴다. 거울에 비친 나는 몇 년간 산 속에서 도를 닦은 사람마냥 시커멓고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인다. 그 사이 허리는 홀쭉해졌고 몸무게는 10킬로그램이 빠졌다. 수염 깎고 옷 갈아 입고 아내가 끓여주는 라면을 배부르게 먹은 다음 침대에 누웠더니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 동면하듯이 깊은 잠에 빠져드는 기분을 만끽한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달콤한 잠이다. 파아란 하늘과 파아란 바다 그 지평선 위를 재주타듯이 날고 있는 조나단이 환상처럼 보였다가 사라졌다.
18:34 몇 시간을 잤을까? 몸이 가뿐하다. 깨어나서 냉장고 열어보고 청소 좀 하라고 아내에게 투덜거리고 있자니 집에 온 것이 실감난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저녁 장보러 나간다. 세탁소를 지나가는데 주인 아저씨가 항상 그랬듯이 인사한다. 반갑습니다. 시장까지 가는데 아들 두 놈이 다투는 것이 그저 사랑스럽게만 보인다.
세상 사는 거 정말 별거 없다. 그 어떤 영광스런 순간도 오욕으로 점철된 순간도 그 모든 순간이 지나가고 어떤 순간은 기억되고 어떤 순간은 잊혀진다.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충실했는가 얼마나 즐겼는가 주위의 소중한 사람과 얼마나 시간을 같이 했는가가 중요하다. 결국 이 세상을 마감할 때 내 주위에 누가 남아 있는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는가가 전부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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