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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 일요일, 두 번째
01:11 따라 오는 것 같다가 십 여 분이 지나자 드디어 개 소리가 멀어졌다. 긴장이 풀리고 다리 힘도 풀린다. 제 자리에 주저 앉았다. 아, 짜증난다. 국도로가자니 차들이 너무 쌩쌩 달리고, 옆에 나란히 있는 샛길로 가려니 개와 마주치고. 너무 무리해서 달렸다. 디딜 수도 없는 오른 발목으로 죽자 사자 달렸더니 이제 조금도 힘을 줄 수가 없다. 이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신히 지탱하고 있던 정신력마저 무너지니 이제는 서있을 힘조차 없다. 그냥 여기에서 자면 안될까? 여기서 자면 죽으려나?
길가 평평한 잔디로 몸을 움직여 누워 버렸다. 둥그런 달이 이동하는 구름 사이로 모습을 보였다가 감췄다가 한다. 달이 참 동그랗다. 아, 오늘 6월 19일이 음력으로 5월 15일이니 보름달이 뜬 거로구나. 순간 내가 보름달을 보고 늑대인간이 되어 양양터미날까지 단숨에 달려가는 상상을 해보았다. 내가 미쳐가는 구나. 땅에서 한기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이런 야심한 밤에 나는 지금 길바닥에 누워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그저 자고 싶을 뿐이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
보름달의 정기가 몸에 들어 온 것이 틀림없다. 너덜해진 오른 발목이 멀쩡하고 마치 날 듯이 달려 나간다. 핸드폰이 울린다. 아내다. 통화 버튼을 누르니 아내의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몸은 좀 어떠냐고 힘내라고 어디쯤 왔냐고 물어 본다.
여보, 이제 조금 있으면 집에 가. 조금만 기다려. 몸 상태는 너무 좋아.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만날 수 있어. 애들한테 조금만 기다리라고 해. 이제 금방 서울이야. 서울? 어 뭐라고 서울? 아니 잠깐 나는 지금 양양터미날로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거리가 일순간 어두워지면서 몸이 굳어져가는 것이 느껴진다. 뛸 수가 없다. 아니, 몸이 왜 이러지. 사방에 불빛이 사라진다. 헤드랜턴 배터리가 나갔나? 수화기 너머 아내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린다.
자기야, 일어나요. 늦었어요. 일어나야 해요. 일어나서 달려요.
01:16 아내의 외침에 눈이 떠졌다. 젠장 꿈이었구나. 지금 몇 시지? 새벽 1시가 넘었다. 그 사이 잠이 들다니. 오늘 두 번이나 길거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땅바닥에서 올라 오는 차디찬 기운에 몸이 굳어 버렸는지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조금씩 움직여 본다. 다리 먼저, 그리고 어깨, 팔, 머리. 식은 땀 때문인지 자욱한 수증기 때문인지 몸은 온통 물에 빠진 생쥐처럼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헤드랜턴을 벗어 주위를 비춰보았다. 별 이상 없다. 상체를 움직여 앉아 보았다. 다시 헤드랜턴을 쓰고 핸드폰을 꺼내어 현재 위치를 확인해 보았다. 핸드폰이 정상 작동을 한다. 양양터미날까지 4킬로미터 정도 남았다. 그래 가자. 어서 가자.
옆에 나무를 잡고 일어서는데 앙다문 입술 사이로 비명소리가 절로 흘러 나온다. 순간 발목이 부러진 건가? 란 생각이 든다. 조심 조심 걸어 본다. 그래 걸을 수 있어. 이 정도 통증은 참을 수 있어. 만일 뼈에 금이 갔거나 부러졌다면 땅에 디딜 수조차 없다. 이 정도야 뭐, 이제 웬만한 육체적 고통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아랫입술을 깨물어 보면서 통증을 참아보려는데 피 맛이 난다. 너무 세게 깨물었는지 입 속에 피가 가득 고인다. 이 와중에도 졸음이 쏟아진다.
01:25 눈꺼풀이 너무 무겁다고 생각이 든 순간 빵! 하는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든다. 차 한 대가 쌩 하니 옆을 스쳐 지나간다. 국도 갓길을 걷다가 잠깐 도로 쪽으로 갔나 보다. 걸으면서 잠깐씩 의식을 잃는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본다.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안 돼. 국도에는 사정없이 달리는 차들이 많다. 제길 이러다간 발목이 부러져 움직이지 못해 길바닥에서 잠들어 죽는 게 아니라 차에 치어 죽겠다는 생각이든다. 몸은 자동적으로 움직인다. 허우적거리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앞으로 나아 가야한다. 눈이 자꾸 감기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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