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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 목요일, 세 번째
09:20 2.5킬로미터 방조제를 뛰어서 20분이 걸렸다. 걷나 뛰나 별반 차이가 없는 속도다. 방조제 바닥이 너무 울퉁불퉁해서 달릴 수도 없었다.
서해로 우측에 있는 아산만방조제를 따라 끝까지 가니 아산호교차로가 나오는데 그 다음 길로 가려면 도로를 무단횡단 해야 했다. 국토일주하면서 지금 몇 번이나 범법행위를 하는지 모르겠다.
차가 뜸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도로 중앙에 있는 펜슬 몇 개를 뛰어 넘어서 교차로를 통과했다.
09:30 다리를 드는 동작을 할 때마다 허벅지가 바지에 쓸려 신경이 쓰인다. 러닝바지 하나로 국토일주를 마칠 생각으로 허벅지를 덮는 길이의 러닝바지를 입었더니 바람도 통하지 않고 답답하다.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옷핀으로 앞부분을 말아 올렸다. 비록 앞부분이지만 아까보다 바람도 들어 오고 허벅지도 덜 쓸리는 것이 한결 낫다.
10:25 일반도로를 따라 한참 가다 보니 큰 저수지가 나온다.
이야, 이런 걸 보고 한 폭의 수채화라고 하는 거구나. 지도를 보니 아산시 영인산 자락에 위치한 냉정저수지이다.
저수지 한 가운데에는 폭이 넓고 깔끔하게 정비된 중층잔교(中層棧橋) 낚시터도 보인다. 좌대에꾸부정하게 앉아있는 어르신 허옇게 센 머리가 깝북 깝북 떨어진다. 시간을 벗삼아 졸고 있는 강태공 어르신은 틀림없이 세월을 낚고 있는 것이리라. 수면 위로 백로가 낮게 날아다니고 가끔 이름 모를 물고기가 첨벙거린다.
저수지 둘레길에 나무가 울창하게 하늘을 가리니 그늘이 진 곳은 시원하다. 가을이 되어 이 수많은 나무에 단풍이 들면 정말 장관이겠구나. 언젠가 가을에 이 길을 꼭 한번 다시 와야겠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니 풍경이 멋진 건 둘째고 언제나 순천향대에 도착할 수 있을지 시계만 계속 들어다 보게 된다.
아침에 방조제터널을 통과하면서 왼쪽 발목에 입은 상처도 신경이 쓰이지만 그보다도 오른쪽 새끼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는지 달리지를 못하겠다. 오른발에 힘을 줄 때마다 새끼 발가락에 느껴지는 통증이 장난이 아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이런 고문이 따로 없다.
10:55 삼사킬로미터나 걸었을까? 저수지 둘레 길을 벗어나 잠깐 국도를 타다가 다시 시골길로 접어 들었는데 햇볕이 따갑다. 가는 길에 그늘이 없다. 머리에는 손수건을 두르고 모자를 썼지만 다리는 무방비상태로 햇볕에 고스란히 노출된 상태다.
아차,아침에 다리에 썬크림 바르는 걸 깜박했는데 몽땅 익었겠군. 다리는 따갑다 못해 이제 후끈거린다. 대 실수다. 지금이라도 발라야지 싶어 잠시 멈춰 자외선차단제를 다리에 발라본다. 조금 쓰리다. 다리가 아주 바알간 것이 맛있게 익었다.궁둥이 살이 쓰리고 새끼 발가락 물집에, 이제는 다리 전체 피부가 화상 입기 일보 직전이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11:04 잠시 산길로 접어들었나 싶었는데 왼쪽에 골프장이 보인다. 지도를 확인하니 골프장 이름이 ‘아름다운 골프장’이다.
골프장 철조망을 왼쪽에 두고 한 없이 이어진 흙 길을 이동한다. 건너편에서 골프 치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이따금 들리곤 한다. 골프장 안에는 어떨지 몰라도 바로 여기 밖은 땡볕도 이런 땡볕이 없다. 게다가 바람 한 점 없다.
궁둥이 골에는 땀이 계속 차고 휴지를 끼우는 것보다는 바람에 말리고 싶은데 환장할 노릇이다. 혹시라도 불라치면 잽싸게 그 방향으로 궁둥이를 까곤 하는데 타이밍이 잘 안 맞는다.
철조망을 따라 한참을 걷고걷고 또 걷고 있는데 순간 바람이 분다. 궁둥이를 까고 양손으로 살을 약간 벌려 얼른 바람 부는 방향으로 돌렸다. 다리 사이를 스쳐가는 바람이 정말 시원하다.
한참 궁둥이 사이 살이 뽀송해짐을 느끼고 있는데 뭔가 뒤통수가 따갑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 보는데 철조망 건너 골프채를 들고 있는 예쁘장한 아가씨와 눈이 마주쳤다.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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