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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수요일, 여섯 번째
13:05 회원들의 문자와 카톡, 댓글을 하나 하나 읽다가 어느 카톡 글에서 눈이 멈췄다. 장성읍에서 만나 식사를 같이했던 이공이공님의 카톡이다.
나주에서 목포까지 영산강 자전거길은 매우 구불구불하고 사람과 매점이 없어서 지금 벗어나지 않으면 노숙하기 딱 십상임. 샛길이 나오면 무조건 빨리 자전거 길에서 탈출해야 함.
알겠다고 답변은 했으나 지도상으로 내 위치가 파악이 안 된다.
길 찾기가 어려워서 일단 영산강 따라 가려고 한다는 내용의 답문을 보냈다.
카톡이 계속 온다. 무조건 자전거길을 벗어나 마을을 찾아서 몽탄대교를 물어서 방향을 잡으란다.
몽탄대교만 찾아서 건너면 바로 목포라는 문자를 받은 것을 마지막으로 핸드폰이 먹통이 되었다. 나도 핸드폰도 동시에 더위를 먹었다. 젠장, 주인을 잘못 만나 네가 고생이구나.
몇 분여 지나 다시 핸드폰이 켜진다. 얼른 지도앱을 켰다. 현 위치는 회진리가 맞다. 영산교까지는 가서 자전거 길을 빠져 나와 공산리로 가로질러야겠다.
13:25 문제가 하나 생겼다.
태양은 모든 사물들을 굴복시키려는 듯 더욱더 광선 검을 휘두르고 있는데 아까부터 배가 살살 아프더니 급기야는 소리를 내며 무작위로 신호를 보낸다. 점심 때 사철탕을 너무 많이 먹었나. 배에서 천둥번개가 친다.
아이고, 이거 안되겠다. 못 참겠다. 하지만 여기는 화장실 하나 없다. 어쩔 수 없다. 사람 하나 없는 들판이지만 그래도 수풀 속에 들어가서 얼른 일을 보고 나와야지. 조심 조심 안쪽으로 들어가 발로 수풀을 밟아서 볼일 볼 자리를 만들어 놓고 궁둥이를 까고 앉았다. 소리가 요란하다. 이거 설사다. 어휴, 이 땡볕에 이게 왠 일이냐.
수풀이 엉덩이에 닿는 게 싫어서 다리에 힘을 주고 엉거주춤 앉아 있자니 다리가 후들 후들 떨린다.
배낭에서 휴지를 꺼내서 뒤처리를 하고 얼른 일어나려 하는데 이런 저 멀리 무슨 차소리가 들린다. 살짝 일어나서 수풀 사이로 봤더니 마침 소독차가 자전거 길로 지나가면서 수풀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아 놔 이거 지나갈 때까지 숨어 앉아 있어야겠다.
궁둥이를 깐 상태에서 다시 그 자리에 앉아 있는데 아까 밟아 놓았던 수풀들이 다시 조금씩 일어서면서 엉덩이를 간질간질 간지럽힌다.
어, 그런데 너무 오래 앉아 있었나 다리에 쥐가 난다. 어떻게 하지? 손가락에 침을 묻혀 코에 발라보아도 별로 나아지지 않고 점점 다리가 무감각해진다. 저 놈의 소독차는 왜 이리 천천히 지나가는 거야. 아 이제 더 이상 못 참겠다.
그냥 일어나자 생각하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제길, 그 이후는 당신의 상상에 맡기겠다.
한증막을 연상케 하는 후끈한 수풀 속 쭈그리고 있는 온 몸은 땀으로 샤워하고 있는 상태, 물 반 건더기 반 심하게 냄새 나는 변 위에 아주 편하게 앉아버린 당신이라면 과연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너무 어이가 없는 상황에서 어찌 웃기던지 핸드폰을 꺼내 그 순간 셀카를 찍었다. 정말 불행 중 다행으로 나에게는 충분한 물 티슈가 있었고, 닦아 내고 버릴 수 있는 여분의 팬티가 있었다. 그래도 냄새 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어찌하랴. 마을이 나타나면 염치 무릅쓰고 화장실에서 한번 더 닦으리라.
15:19 속을 후련하게 비우고 나니 몸이 가벼워 졌는지 발걸음에 조금씩 속도가 붙는다. 목이 심하게 타고 가다 보면 막힌 길도 나오지만 나 이제 국토일주 8일차다. 산전수전 공중전 화생전에 위생전까지 겪은 나로써는 이정도야 코웃음이다.
어느 정도 가는데 다리가 하나 있다. 지도를 보니 이 다리를 건넌 다음 자전거 길에서 송죽리로 빠져 나와서 곧장 남창리 화성리 진천리 대전리를 거쳐 이동하면 몽탄대교다. 하지만 가로질러도 몽탄대교까지는 대략 20킬로미터는 족히 되는 거리다. 그리고 나서도 목포터미날까지 17킬로미터를 또 가야 한다. 갈 길이 멀다.
이 다리가 무슨 다린지 모르겠는데 지도를 보니 죽산교이지 않나 싶다. 모르겠다.
다리를 건너는데 저기 다리 건너편에 무슨 건물이 하나 있다. 어라, 그리고 보니 관리자인 듯한 아저씨도 보인다. 오아시스를 본 사람마냥 허겁지겁 쓰러질 듯 달려가서 혹시 매점 같은 것이 있냐고 물으니 매점은 없다면서 자판기를 손으로 가리킨다.
감사인사도 생략하고 바로 달려가 이온음료와 생수를 다 먹어 치울 것처럼 몽땅 뽑아서 마셔버렸다.
이렇게 다시 살아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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