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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수요일, 다섯 번째

 

 

11:52 잘 먹었습니다! 고함지르듯 인사하고는 음식점을 나서서 배경으로 사진 한 방 찍고 다시 이동한다. 

 

 

이제 목포까지 가는 거다. 원래 뙤약볕에서는 이동하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건만 그러기에는 오늘 목포까지 물리적 시간이 너무 모자라다.

남은 시간은 길어봤자 열 시간, 남은 거리는 약 40여 킬로미터다. 그것도 가로질렀을 경우다. 하지만 이제까지 가로지르려다가 얼마나 많이 길을 헤매었던가.

그래, 최대한 영산강 자전거길로 이동하다가 방향이 크게 벗어날 경우 그 때 이탈해서 길을 찾자. 그러면 다시 영산강 자전거길로.

 

 

12:44 킬로미터나 이동했을까.

여기 자전거 길은 선사시대의 들판도 아니고 길가 옆에 자라난 수풀이 내 키의 두 배는 된다. 바람이 전혀 없고 수풀에서 뿜어대는 열기가 이건 한증막 저리 가라다. 무엇보다 정수리 위에서 내리 꽂는 햇빛은 그야말로 뜨겁다 못해 따갑다.

 

 

햇빛이 눈에 보인다면 어떤 모습일까? 달이 곱게 차려 입은 차도녀라면 태양은 의욕이 넘치는 열정남일까. 열정남이 쏟아 내는 햇빛에 온 몸이 따끔거린다. 마치 날카로운 광선 검처럼 내 몸을 난도질하고 있다. 화상 당한 곳에 또 화상이다. 그는 썬크림을 뚫고 내 피부를 그야말로 모락모락 태우고 있다. 녀석이 내려 앉는 곳에서 아지랑이인지 연기 같은 것이 피어 오르는 것을 느낀다.

 

나주를 떠난 지 한 시간 여 만에 1리터 물이 동났다.

이건 미친 더위 미친 뙤약볕이다. 달리는 건 고사하고 그저 발을 떼서 한발자국씩 이동하는 것이 최선이다.

몽롱하다. 이게 꿈 속을 걷고 있는 건지 여기가 천국인가 지옥인가? 하늘에서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는 투명한 잿가루가 여기 이 길에 촘촘하게 내려 앉고 있다. 잿가루가 닿는 모든 물체가 녹아 없어진다. 나를 비롯한 지구상에 모든 생물들을 없애버리기 위한 외계인의 침략이다. 이런 식으로 목포까지 못 가게 하는 것인가? 나는 이럴 줄 알고 아직 차편도 알아 보지 않은 것일까. 저녁에 목포 도심에 들어가서 버스를 타든 기차를 타든 오늘 중으로 부산에 들어가려 했던 계획에는 이런 무더위가 고려되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해 진다.

 

12:53 햇빛을 피해 잠시 나무 그늘을 찾아 핸드폰을 살펴 보니 문자와 카톡이 와있고 SNS와 카페 게시글에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려 있다. 확인해 보니 진심 어린 격려와 응원이 가득 담겨 있는 글들이다.

정말 많은 것을 깨닫게 되고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정말 많은 것을 버리게 되고 정말 많은 인연을 얻게 된 여행이 아닐 수 없다.

해보니 혼자서는 참 힘들었겠구나 란 생각이 든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많은 분들의 응원과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감사하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12 년 전 마라톤 카페 첫 오프라인 정모에서 카페회원들을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

 

 

20047 17일 토요일 오후 여의도, 한강을 옆에 끼고 같이 달렸다. 열 명은 족히 넘었던 것 같다. 즐거웠다. 아니, 행복했다. 딱 그 표현이 어울릴 듯 하다.

한 시간이 채 안되게 조깅한 후 마지막 몇 백 미터를 앞두고는 각자 질주를 해보았다. 마라톤 초보도 있었고 초고수도 있었다.

 

옷을 갈아 입은 뒤 가까운 호프집으로 향했다.

아니, 이런! 달리는 것도 좋았지만 뒤풀이가 더 환상적이었다. 주제는 딱 하나 공통된 주제 달리기. 나이를 떠나서 성별을 떠나서 직업과 직함을 떠나서 우리는 마라톤이란 주제로 하나가 되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를 빠르게 잘 달리는 것, 마라톤 기록을 단축시키는 것, 그것만이 모임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겠구나.

마라톤은 우리에게 삶의 원동력이자 인생이고 삶 그 자체였다.

 

그 때였을까? 하루 종일 달리기만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풀코스 42.195킬로미터를 넘어서 100킬로미터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하려는 미친 생각 말이다. 하루종일 달리면 몇 킬로미터나 달릴 수 있을까? 마라톤에 미친 사람들을 만나 그 시너지가 증폭되고 있었다.

 

카페 정모와 달벙은 내 인생에 있어서 살아가는 동력 중에 하나였다.

순수한 마음으로 마라톤을 즐기고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힘들었던 당시 내게 사막의 오아시스이자 성인들의 놀이터, 지친 영혼의 회복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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