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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8일 토요일, 세 번째

 

 

15:12 어 지금 몇 시야? 잠시 눈을 감는다는 것이 두어 시간을 자버렸다. 이거 난리 났다. 쉬어도 너무 쉬어버렸다. 한 동안 멍하니 있다가 시간을 보니 오후 3시다.

, 이제 가야 한다. 번개같이 짐 챙겨서 나와보니 태양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좋다. 그리고 어라 발목이 완전 괜찮다. 이게 웬일이야. 오전을 내내 휴식을 취하는데 쓰고 도수치료부터 물리치료에 소염진통제, 마사지까지 그 효과가 나타나나 보다. 양양까지 50킬로미터를 오늘 안에 가려면 이제 9시간 남았다. 해파랑길을 따라 갈 걸 생각하면 길 헤맬 일은 없을 것이고, 중간에 두어 번 식사할 시간 그리고 지도를 보아하니 산을 한 번 타야 할 것 같은데 지체되는 시간까지 대략 계산해보니 아무래도 야간주는 필수고 내일 새벽까지도 시간이 넘어갈 것 같다.

그래, 다리만 이 정도 상태를 유지해준다면 뭐 9시간 안에 50킬로미터 주파는 일도 아니다.

 

 

15:34 슬슬 달려본다. 아킬레스건에 과부하를 주지 않기 위해서 앞꿈치로 못 딛고 뒤꿈치를 먼저 딛다 보니 뒤꿈치부터 종아리와 척추를 거쳐 뒷목까지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이 느껴진다. 부상원인의 반복이고 악순환의 반복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제 이렇게 반나절 달리면 이 국토일주도 끝이다.

 

 

 

15:42 아점을 먹고 아무것도 안 먹었더니 허기가 진다. 작은 마을 이름없는 매점에 가서 빵과 우유를 사서는 매점 앞에바위라고 해야 할지 돌멩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 위에 앉아 허겁지겁 해치우고 다시 달린다.

 

 

 

산길에 접어 들었는데 산 속 어딘가에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이상 야릇한 소리가 들린다. 귀를 열고 들어 보려 했으나 정체가 불명이다. 어찌 들어 보면 동물소리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들으면 기계 돌아가는 소리 같기도 하고, 몇 분간 계속 들어 보니 이제는 사람울음소리 같기도 하다. 갑자기 모골이 송연해져서 달리는 속도를 높인다.

10여 분간 산길을 달렸더니 어느덧 그 정체불명의 소리가 사그라들었다. 그래도 국토일주하면서 별의별 희한한 것들을 경험했기에 이 정도이지, 보통 사람 같았으면 필경 몸이 딱 얼어붙었음직한 공포스런 소리였다. 게다가 다행히도 낮이었으니 밤이었다면 나 역시 온전치 못했으리라. 간담이 서늘해져 더운 것도 잊고 달렸다

 


 

16:07 공포심에서 벗어나려 얼른 핸드폰을 열고 SNS를 봤다. 힘들 때마다 보곤 하는 SNS 응원 댓글은 나에게 비타민 같은 존재다. 국토일주는 내 SNS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다. 국토일주 소식을 페이스북에 매일 올렸더니 500명 남짓하던 페이스북 친구가 3주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어느덧 2000명에 육박했다.

 

그래, 난 국토일주를 하며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 페이스북 친구를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그건 깨달음이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깨달음 중 하나는 체력의 한계와 체력의 극한을 경험했다는 것 그리고 그 때의 감정 바로 두려움, 그리고 혼자일 때 느낄 수 있는 공포심의 한계치였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과 공포심의 극한을 극복한 것은 나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힘과 능력을 가져다 주었다.

 

 

16:28 산을 하나 타고 넘는다. 아무리 발목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뛰는 건 무리다. 능선 따라 걷고 있는데 산들 바람에 바다냄새가 묻어 나오는 것이 해변이 가까이 왔나 보다. 비릿내를 맡는데 싱그러운 파도와 바닷가가 연상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해안이 보이나 둘러 봤지만 나무와 산등허리에 걸려 육안으로는 보이지는 않는다. 강릉부터 1시간 반은 이동했나 보다.

 

 

산길에 접어들면서 계속 걷고 있는데 작은 모래알 하나가 신발 바닥을 돌아다니고 있다. 영 신경이 거슬린다만 그것도 결국 나의 일부분이다. 벗었다가 다시 신는 것도 사실 귀찮다. 씩씩거리며 이동하는데 경포해변까지 1.7킬로미터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났다. 아직 2킬로미터여나 남았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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