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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 토요일, 네 번째
17:04 어느덧 산 밑으로 내려와 30분 여 이동하니 그래, 이제 바다다.
2016년 6월 18일 토요일 오후5시 4분. 나는 망부석이라도 된 듯 우뚝 서서 바다 어느 부근 한 곳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등허리에 한없이 펼쳐져 있는 파아란 바다. 한동안 서서 파도 치는 것을 봤다.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도 보고 끼룩 끼룩 울면서 날아다니는 갈매기도 보고 티 한 점 없이 밝게 웃으며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는 소녀도 보았다. 나는 거기서 천지의 시초를, 조물주의 사랑을, 사람의 순수함을, 자연의 포용을 보았다.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는 나는 행운아다.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지금 아닐까? 아니, 매일 매일 이 순간 순간이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이지 않을까?
17:18 해안가를 따라 해파랑길이 아기자기하게 이어져 있다. 정말 달릴 맛이 난다. 해파랑길 양쪽으로는 소나무들이 도열되어 있고 담장을 이루고 있는 소나무 너머 철썩 철썩 파도소리가 들려 온다. 알 수 없는 희열이 몸 속 깊은 곳에서 끓어 올라 온다. 갑자기 이야호 이야호 환호성을 내지르면서 펄쩍 펄쩍 뛰었다. 누군가 이런 내 모습을 봤다면 정말 돌아도 단단히 돌은 놈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뭐 상관 있는가? 지금 이 순간 이 곳은 내 세상이다.
17:43 20여 분을 더 달려 하평해변에 도착했다. 하평해변 이정표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 방 찍고 다시 달린다.
우측에 해안가가 길게 늘어뜨려있고 그 갓길을 달려 나간다. 국토일주 내내 도로 갓길을 달리다 보면 차가 오는 방향으로 달려야 하는지 차가 가는 방향으로 달려야 하는지 고민할 때가 있다. 다른 변수가 없으면 차가 오는 방향 갓길로 달린다. 하지만 갓길의 폭을 보고 넓은 쪽으로 간다. 갓길의 폭이 비슷하다면 그늘이 있는 쪽으로 간다. 국토일주를 18일동안 하면서 나름대로 세운 기준이다.
18:08 이번에는영진해변 이정표가 보인다.저녁 6시가 넘어 간다. 국토일주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매 순간이 소중하다. 오늘 마음껏 달리고 걷고 보고 느끼고 있다. 마음껏 구경하고 돌아다니고 멈춰서 멍하니 있어도 본다. 아직 개장안한 바닷가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의 외침소리가 싱그럽다. 강원도 바다바람 숨결 하나, 낯선 사람들의 동작 하나, 말소리 하나, 국토일주하면서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모든 것이 새롭다. 아름답다 강원도. 알라뷰 강원도. 알라뷰 우리 국토, 대한민국.
18:23 이름 모를 해안마을을 지나는데 해변가 매점에서 흘러나오는 음식냄새가 코 끝을 간지럽힌다. 그러고 보니 오전에 먹은 아점과 점심 즈음 먹은 우유 빵 이후 먹은 것이 없다. 힐끔 쳐다봤더니 매점 주인할머니와 아줌마가 간난아이 밥을 먹이고 있다.
혹시 여기 식사 되는 거 있나요?
주인할머니가 잠시 내 모습을 스캔하더니, 라면 된다고 한다. 두 개 끓여 달라고 하고 식탁 구석에 앉았다.
얼마 안 있어 나오는 라면.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라면이 또 있을 수 있을까? 꿀떡 꿀떡 목구멍으로 잘도 넘어간다. 뭐 거의 씹지도 않고 넘기듯이 먹었다. 건더기 하나 국물 한 방울 남김없이 완벽하게 해치웠다. 라면 먹는 내 모습을 보던 할머니 입이 딱 벌어진다. 배가 두둑하니 몸도 마음도 여유롭다. 좀 쉬고 싶으나 어두워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이동해야 한다.
19:07 이제 벌써 밖은 어둑어둑해진다. 매점 들어간 지 몇 십 분만에 나와 해안을 따라 천천히 달려 본다. 오른편에 까마득히 펼쳐져 있는 모래사장이 아름답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바닷가로 향한다. 그래 나도 한번 해변가를 달려 보자.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든 말든 신나게 뛰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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