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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수요일, 다섯 번째

 

까악 까악, 저기 언덕너머 까치 소리가 들린다. 오늘 보고싶은 사람을 만날려나, 그보다 하늘에서 냉수 한 바가지 똑 떨어졌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냉수 한 바가지가 눈에 나타났다. 어라 이게 왠일이냐. 왠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 와서 냉수가 가득 담긴 대접을 들고 내 눈 앞에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학생 더워 보이는데 냉수마시게.

아주머니는 빙긋 웃으면서 이상한 거 안 들었으니 어여 마시라는 듯이 내 손에 대접을 쥐어 주신다. 내가 쓰러져 있는 것을 집 창문 밖으로 보고 집에서 가져 왔단다. 감사하다는 말은 나중에 사발을 얼른 받아 한 숨에 들이켰다.

살 것 같다. 고비 때 마다 하늘에서 천사 내려 보내듯 과자주고 냉수주고 이게 무슨 조화인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거듭 고맙다고 인사하며 다시 발 길을 재촉했다.

 

 

마을을 떠나 끝없는 하천길을 걸어가며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큭 나보고 학생이래. 나도 아저씨이긴 하나 보다. 학생이란 말 한마디가 가슴에 남아 기분이 이렇게 좋다니.

까치야 고맙다. , 이제 냉수의 힘으로 다시 가보자.

 

18:00 지도를 보니 덕지산을 끼고 넘어가면 평택시 입성이다. 조금만 가면 국토일주 첫 날 목표를 완수하는 구나. 조금만 힘을 내서 뛰어가보자.

살살 뛰어 가보니 산과 산을 잇는 고가가 나오고 고가 아래에 평택제천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이 보인다. 차 소리가 이렇게 크다니. 귀가 멍멍할 정도다. 이제 차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다. 하지만 빨리 가려면 차와 함께 국도로 달릴 수 밖에 없다. 선택했으면 감수해야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길 수 밖에 없다.

 

18:09 빠르게 통과해서 마을 길을 따라 가다 보니 갑자기 탁 트인 시야가 나온다. 마을이 참 현대식으로 잘 정비되었다 싶었는데 표지판을 보니 평택일반산업단지다. 2층에서 3층높이의 넓은 사각형 건물들이 군데 군데 놓여져 있고 차도도 인도도 널찍널찍하다. 이 넓은 공간에 차도 안 다니고 사람도 없다. 정말 한적하다라는 표현은 이 때 쓰는 거다. 달리기에 딱 좋은 거리다. 그래 달려 보자.

 

18:20 조금 뛰다 보니 아까 땡볕에 이동할 때부터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궁둥이 사이 살이 너무 쓰렸다. 그 곳에 무슨 가시가 박힌 마냥 따끔거리고 아픈 것이 서있으면 괜찮은데 움직이면 살이 쓸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습진이 생긴 건가, 가시가 박힌 건가.

왜 그럴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원인을 알아냈다. 궁둥이 골 사이로 땀이 찬 상태에서 오랜 시간 살끼리 부벼지니 피부가 약해지고 거기에 털이 찌르니 걸을 때마다 극심한 고통이 전해져 온 거다. 즉 마찰로 인한 쓸림이 원인이었다.

너무 고통이 심해서 급한 데로 휴지를 돌돌 말아 사이에 끼우고 살살 달려 봤다. , 훨씬 낫다. 땀 차는 것도 방지하고 피부가 쓸리는 것도 막는 일석이조의 방법이다. 하지만 그야말로 임시방편, 고정이 안 되기 때문에 달리다 보면 빠져 나와 다시 끼우고 달리기를 반복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제일 좋은 방법은 기회가 될 때마다 궁둥이를 까고 바람에 말리는 건데 사람이 없을 때 가능한 방법이었다.

 

18:35 마침 주위를 돌아보니 이 널찍한 평택산업단지에 나 혼자다.

멈춰 서서 러닝바지와 팬티를 내리고 바람 부는 방향으로 궁둥이를 말리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누군가 싶어서 봤더니 아내한테 걸려온 화상통화다. 얼른 바지를 올리고 전화를 받았다.

점심 이후 카드 구매내역도 없고 SNS에 글도 안 올라와 궁금해서 전화했단다. 아내와 아들 둘의 개구진 얼굴 표정이 화면에 꽉 차있었다. 어디냐는 질문에 대답대신 화상으로 노오란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한 주위 풍경을 보여줬다. 아내는 너무 낭만적이라고 하고, 아들 둘은 아빠 혼자만 놀러 가고 치사하다고 그런다. 나 참 궁둥이살 쓰린 건 말도 못하겠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아내한테 현재 위치와 상황을 알려주고 안심시킨 다음 애들한테는 국토일주 다녀와서 같이 놀러 가자고 달래주었다. 아내는 어두울 때 이동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알겠다고 빨리 도심에 가서 숙소를 정한 다음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하고 에둘러 끊었다.

 

걷는 속도를 좀 높여 본다. 저 멀리 해가 산마루에 걸리고 있다. 아름답다. 산 등선에 맞닿은 노오란 하늘이 이제 붉게 번지는 것이 마치 산에 불이 난 것처럼 활활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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