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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 목요일 일곱번째
17:55 한참을 이동했는데 저수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지도에서 봤을 때는 저수지제방에서 산을 끼고 도는 호반길이 1.7킬로미터 밖에 안 되는데 가도 가도 주변만 맴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체감 거리는 거의 5킬로미터는 되는 듯 하다.
18:06 저수지 사진을 찍었는데 산허리 하나 돌기 전에 찍은 사진과 비슷하게 보인다.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걷는 듯한 느낌이랄까?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가 늦은 오후 햇빛이 안 드는 산길은 시원하다 못해 약간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진다. 게다가 저수지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냉한 물기를 머금고 있어 춥기까지 하다. 그러고 보니 풀그림님이랑 헤어지고 나서 약 두어 시간을 넘게 이동하면서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이거 참 이상하다. 보통 낚시꾼이라도 한 두어 명 보여야 보통인데, 갑자기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호숫가에 낮게 깔리던 해가 이제 산마루 주변을 붉게 태우고 있다. 금방 어두워 질 것이다. 낭패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밤을 만나면 산길이든 호반(湖畔)길이든최악의 경우다. 빨리 이 길을 벗어나야겠다.
18:27 저 멀리 산길 허리 끝에 허름한 집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울창한 수풀 속에 묻혀 있는데 무척 오래되어 보인다. 가까이10여 미터까지 가서 보니 1층짜리 양식집인데 폐가다. 폐가도 한 백 년은 되어 보이는 폐가다. 집 앞에 큰 아름드리 나무들이 있고 온갖 이름 모를 수풀이 집 둘레를 감싸고 있다. 어떻게 이런 곳에 이런 집이 있을까? 참 신기한 생각에 사진으로 남겨야지 하고 핸드폰을 꺼내어 찰칵 찍는 순간이었다.
창문에 뭔가가 나타났다. 그건 분명 사람이었다. 바가지 머리에 하얀 티셔츠를 입고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어린아이였다. 혼비백산해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정말 걸음아 나 살려라, 숨이 터지도록 달리고 달려 얼마나 질주했을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아까 폐가를 찍은 사진을 확인한 순간, 나는 또 한번 기절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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