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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 목요일 여섯번째
15:05 자, 이제 유구읍까지 30킬로미터 거리가 남았다. 심적으로 힘은 나지만 체력이 방전되어 달릴 수가 없다. 마음은 저만치 가 있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오른쪽 새끼발가락 물집을 핑계로 걷는 것보다 더 느린 속도로 이동하면서 대화를 나눈다. 풀그림님은 나보다 서너 살이 더 많다. 그만큼 하는 대화 중에 귀담아 들을 말도 많다. 한발자국 뗄 때마다 고통스러워 하는 나에게 본인 군대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힘을 북돋는다.
‘신병교육대를 들어가면 딱 14일째에 몸이 적응이 되거든. 그 전까지는 죽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14일이 되면 완전히 적응되는 거야. 참 신기하지?’
풀그림님과의 수다가 즐겁다. 날짜로 보자면 이틀 만에 만난 건데 마치 몇 달 만에 만난 것처럼 반갑다.
16:24 5킬로미터 정도 같이 걸었을까? 황산2리에 접어 들어 오산말 마을이 나오고 풀그림님은 열차 시간 때문에 돌아간다고 한다. 아쉽지만 여기서 다시 혼자 간다. 그래도 이제 유구읍까지 25킬로미터만 가면 된다.
16:49 풀그림님 가자마자 긴 오르막이 나온다. 산길을 따라 걷고, 걷고 또 걷다 보니 내리막길이 나오고 그렇게 5 여 킬로미터를 갔을까? 하천이 하나 나오는데 지도를 보니 약봉천이다. 하천 따라 또 5킬로미터 정도를 계속 간다.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디딜 수 없을 정도로 따가운 걸 보니 물집이 잡힌 살이 뜯겨졌나 보다. 제길, 산 너머 산이라고 궁둥이 속살도 다시 쓰리기 시작한다. 참고 달려야지 별 수 없다.
17:35 좀 더 내려가니 넓게 펼쳐진 저수지가 눈 앞에 들어 온다. 송악저수지다.
이제 송악면에 입성했구나. 시간은 어느새 저녁 6시를 향해 달려 가고 있다. 장구목산과 긴골산 왼쪽허리에 ㄴ 자로 고여있는 송악저수지는 아산시에서 제일 크고 길다고 했다.
산 두 개를 오른편에 끼고 송악저수지 호반길로 이동한다. 산길은 깨끗하고 조용하고 고요하다. 아니 적막하다. 멀리서 들리는 이름 모를 산새 소리와 늦은 오후 나른한 햇빛이 나뭇가지를 스쳐 호숫가에 내리 깔리는 것이 몽환적이다. 마치 수풀 사이로 손가락만한 요정이 뽀르르 소리를 내며 나타날 것 같다. 이따금 수풀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은 아닐 것이고 틀림없이 자그마한 다람쥐 같은 짐승일 텐데 소리 나는 쪽으로 아무리 살펴 보아도 보이진 않는다.
또 소리가 들린다. 이번엔 의외로 소리가 크다. 문득 사람은 아니겠지 그럼 뭘까 란 생각이 드니까 무서워 진다. 걸음이 빨라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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