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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3일 금요일, 네 번째

 

 

09:43 드디어 유구읍내에 입성했다. 도로가 깨끗하다. 이제 여기서 충분히 쉬다가 해가 떨어질 때쯤 다시 출발하리라

 

 

오늘은 야간주를 각오해야겠다. 이제 땡볕주는 다시는 안 한다. 여기 유구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화상 입은 다리도 치료해야 한다.

마침 약국이 보인다. 약사 아저씨가 벌겋게 익은 다리를 보더니 1도 화상이라며 바르는 약을 주면서 더 이상 햇빛을 쐬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저도 알아요, 그런데 저는 국토일주를 해야 한다구요.

약국 문을 나서는데 다리에 썬크림 꼭 바르라는 약사 아저씨의 경고가 다시 한번 뒤통수에 꽂혔다. 환자를 걱정해 주시는 마음이 지극 정성인 약사 아저씨다.

 

10:05 일단 뭘 좀 먹어야겠다. 읍사무소 주변까지 가니 제법 음식점도 많고 사람도 꽤 보인다.

신발 벗고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양말까지 벗고 들어가 배낭 풀고 핸드폰 충전시키고 국밥 한 그릇을 시켜 순식간에 비워 버렸다. 양이 모자라다 싶어 뭘 좀 더 시킬 모양으로 그제서야 메뉴판을 자세히 봤더니 냉면으로 유명한 집이다.

물냉면을 시켰는데 욕심이었다. 삼분의 일 가량을 남겼다. 이제 배도 차고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이라 손님들도 들어 올 텐데 계속 앉아 있기가 눈치 보인다. 한 시간은 넘게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어디 가서 좀 쉬었다 가야지 하고 음식점을 나섰다

 

 

11:51 읍사무소를 좀 지나쳐 가니 목욕탕이 하나 보인다. 아싸, 쾌재를 부르며 들어가려니 현금밖에 안 받는다고 한다.

 이런 제길 어쩔 수 없이 현금인출기를 찾아 지친 몸을 이끌고 유구터미날까지 가서 현금을 찾아 가지고 왔다.

목욕탕에 사람이 없다. 여기도 손님은 나 혼자다.

샤워기를 틀었는데 뜨거운 물이 다리에 닿는 순간 악! 소리가 삐쳐 나왔다. 화상 입은 데가 너무도 쓰라리다. 놀라서 얼른 샤워기를 끄고 나서 봤더니 다리에서 김이 피어 오른다. 안 되겠다 싶어 그 옆에 미지근한 온도의 욕탕에 들어가서 몸을 담그고 있으니 좀 낫다.

세상이 다 내 세상이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온탕에 한참을 있다가 나와서 냉탕에 들어가 냉찜질도 하고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다 보니 몸이 지친다. 욕탕에서 나와 창문 너머 밖을 보니 해가 쨍쨍이다. 어휴, 이 더위에 나는 못 나간다.

목욕탕 주변을 둘러 보니 옷 보관함 한 쪽 구석에 누울만한 꽤 괜찮은 평상이 보인다. 이따가 저기서 쪽잠을 잘 수 있겠다.

 

12:36 온탕 냉탕을 번갈아 수십 번을 들어갔다 와서 그런지 몸은 곤죽이 되어 이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다. 아까 찜 해둔 평상에 드러누웠다.

솔솔 불어 오는 선풍기 바람이 마치 지중해 외딴 섬 흔들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상상하게 만든다.

몸이 늘어 진다. 여기가 정말 따뜻한 남쪽 나라 해변이었으면 좋겠다.  

 

해변에서 나는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해안을 따라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파란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급기야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어둠 속을 달린다.

어느 순간 어둠은 희미한 불빛으로 희석되고 회백색으로 뿌옇게 보이던 주변이 점차 밝아져 오면서 사람들이 눈에 들어 온다. 내 옆에 나란히 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마라톤 러너들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여기가 어디일까? 순간 귀가 트인다. 끊어질 듯 풀무질하는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 길가에 응원하는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나는 지금 마라톤대회장에서 달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여긴 몇 킬로미터지점일까. 나는 몇 분 페이스일까. 입이 마르다. 물을 마시고 싶다. 얼마나 더 가야 급수대가 나올지 가늠이 안된다. 숨이 차고 다리에 경련이 이는 것 같다. 더 스피드를 내다가는 쥐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멈추고 싶다.

그 순간 누가 옆에서 귀에 대고 응원을 한다. 어린아이 목소리다.

힘내요! 멈추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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