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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월요일, 다섯 번째

 

 

나는 달리고 있다. 마라톤대회 풀코스를 신청하고 나서 아침마다 한강까지 달려갔다 오기로 한 첫 날이다. 집에서 4킬로미터가 채 안 되는 거리다.

저 멀리 여의도로 넘어 가는 다리가 보인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그런데 너무 힘들다. 다리가 무겁고 숨도 가빠져 온다. 더 이상 못 뛰겠다. 다리가 딱 얼어붙어 떨어지지가 않는다.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이게 웬일인가.

멈춰서 다리를 주물러 본다. 똑바로 서서 다리를 쭉 펴고 몸을 아래로 구부려 허벅지근육과 종아리근육을 이완시키기를 몇 분. 소용이 없다.

 

주말이라 그런지 길거리에 사람은 없다. 배도 고프다. 문 연 음식점도 없다. 조금씩 걸어 본다. 왼쪽 다리는 견딜만 한데 오른쪽 다리는 영 신통찮다. 몇 백 미터가 마치 수십 킬로미터처럼 길고도 길다. 한강이 이렇게 멀었나. 한 걸음 한 걸음이 고행이다.

다리가 멈췄다. 이제 도저히 못 걷겠다.

 

뭐 하러 내가 이렇게 힘들게 달리고 있지?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곳에서 이러고 있는 거지?

순간 바람이 뒤에서 내 등을 밀어 댔다. 어찌나 세찬지 몸이 앞으로 한 걸음 갔다. 마치 앞으로 계속 가라고 하는 듯 했다. 바람은 정신차려라 포기하지 마라 끝을 봐라 라고 얘기를 한다.

울음이 북받친다.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까지 열심히 살아 왔는데.

어머니…아버지…내 아이…아이엄마…

나 혼자 살아온 삶이 아닌데. 나만을 위해 살아온 삶이 아닌데. 그냥 여기서 포기하는 건 모든 것을 저버리는 거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고생했다. 그래 이왕 고생한 거 조금만 더 가자. 힘내자. 바람이 뒤에서 또 밀어 댄다. 이 세상에는 너 혼자만이 아냐. 바람은 마치 힘내라는 마냥 계속 내 뒤에서 등을 밀어대고 있다.

 

한강공원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 온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 저 멀리 한강이 보인다. 이제 한강이야. 저기 한강이 보여. 없던 힘이 난다. 조금씩 뛰어 본다.

제방까지 이르러서 팔을 펴서 어깨높이까지 들고 숨을 깊게 들이 마셔 본다. 청량한 강바람이 코를 통해 온 몸을 적셔 온다. 해냈다는 작은 성취감이 온 몸을 휘감는 순간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번쩍 들고 소리를 외쳤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21:13 그래 나는 할 수 있어. 중얼거리는 내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순간 눈이 떠지고 밤하늘 허공을 가르고 있는 헤드랜턴 불빛이 보인다. 넘어지며 잠시 의식을 잃었었나 보다. 육체적 한계가 나를 십 여 년 전 기억 속으로 인도하곤 한다. 잊고 지내던 나날들, 생애 첫 마라톤 풀코스를 준비하던 그 시간이었다.  

 

온 몸의 감각세포를 깨워본다. 다행히도 아픈 곳은 없는 거 보니 수풀이 깔려 있는 곳으로 넘어진 것이 틀림없다. 그래 사람이 쉽게 죽지는 않는 거다. 누워 있으니 편하다. 그냥 여기서 이렇게 있자. 하늘을 총총하게 수놓고 있는 별들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내가 지금 우주를 보는 거구만. 나는 우주의 아주 좁쌀만도 못한 존재일 텐데, 아니 먼지만큼은 될까? 그런데 뭐 죽을 것 같다고 이러고 있는가.

이 컴컴한 산 길에 숨쉬는 인간은 반경 3킬로미터 이내에 나 혼자일 거라고 생각하니 묘한 감정이 북받치면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진한 외로움이 가슴을 울렁거린다. 문득 사람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21:17 순간 오랜만에 차 한대가 휙 바람을 가르면서 지나간다. 브레이크등 불빛이 무슨 빛의 속도로 사라져 간다.

그러고 보니 도로 중앙에는 낮은 펜스가 길게 이어져 있다. 발 밑만 보며 달리는 바람에 미쳐 인식하지 못했었는데 펜스가 왜 놓여져 있을까 이 산길에, 무단 횡단할 사람도 없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저건? 불빛, 펜스 너머 저기 고창 방면으로 또 야트막한 고개가 있는 것 같고 그 근방 바로 희미하게 밝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저 불빛은 분명 가까운 곳에 있다. 뭘까? 나도 모르게 일어나 기어가다시피 도로를 가로질러 펜스를 타고 넘어 불빛이 새어 나오는 쪽으로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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