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6월 7일 화요일, 네 번째
지나간다, 지나간다, 이제 바로 뒤다. 이 팽팽한 긴장감, 이 기분, 이 느낌. 나는 황홀경에 빠져든다. 죽음과 삶의 경계선을 달리고 있다.
빠앙, 하는 트럭의 경적소리와 함께 불어 닥친 회오리바람에 몸이 순간 붕 뜨는 느낌이 들면서 또다시 옆 터널 벽에 부딪힌다. 동시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왼 손등을 후려치고 지나갔다. 아마도 트럭이 지나가며 바퀴에 돌멩이가 튕겨졌으리라. 이번에는 정말 위험했다. 주먹이 들어갈 정도 사이로 트럭이 지나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달리며 12년 전 나의 첫 풀코스 마라톤대회장에 다녀 온 것일까?
손등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휴, 왼손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았더라면 얼굴에 큰 상처가 났을 뻔했다. 저 멀리 작은 흰 점 하나가 보인다.
출구다. 드디어 거의 다 왔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속도를 더 붙였다. 흰 점은 점차 커지면서 순식간에 터널 전체를 광명의 빛으로 밝혔다.
11:48 통과했다. 마치 몇 시간은 터널 속에 있었던 느낌이다. 맥이 풀린다. 너무 긴장한 탓이다. 그런데 왜 차들이 지나가면서 죄다 나한테 빵빵거렸을까? 지난 번 국도에서 터널 통과할 때와는 달리 차들의 반응이 많이 심했다. 터널 몇 십 미터 앞에 이정표가 서있다.
여기는 전라남도 장성군이란다.
11:51 차들이 휭휭 지나가는 갓길에서 이정표를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방 찍고 있는데 터널 안쪽에서 사이렌 소리가 멀리 들리더니 점점 가까이 들려온다.
어, 뭐지? 순찰차다. 아니, 그런데 속도를 늦추더니 내 옆에 정차를 한다. 순찰아저씨 둘이 내려서 하는 말.
여기 왜 있으세요?
제가 국토일주 중인데요, 길을 잘 못 들어서요, 저 내려갈게요.
내가 뭘 잘 못했나 싶어 설명을 하려는데, 아저씨들이 무조건 빨리 차에 타랜다.
고속도로는 사람이 다닐 수가 없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특히나 고속도로 터널을 지나가는 건 자살행위라는 친절한 설명도 들었다. 고속도로에 왠 미친놈이 뛰고 있다는 신고를 여러 번 받고 출동했다면서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한단다.
12:01 국토일주 하시는 분이네. 불우아동 후원도 하세요?
직급이 좀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내 부착물을 유심히 보더니 물어 보았다.
나는 가급적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끄덕이면서 최대한 고양이 눈망울로 바라 보며 말을 이었다.
네, 제가 길을 잘 못 들어서 그런 거거든요. 제가 달려서 1킬로미터당 1000원씩 불우아동 후원하는데 이렇게 차 타고 이동하면 후원을 못해요. 저 좀 내려주세요. 달려서 내일까지 목포에 도착해야 하거든요.
순찰아저씨들이 허허참 하면서 경찰서에 전화하더니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훈방 조치한다고 한다.
그래도 여기 고속도로에 내려주면 또 신고가 들어올 수 있어요. 저기 장성인터체인지에 내려줄 테니까 거기서 국도 타고 이동하세요.
감사합니다를 연신 하고 있는데 SNS에 댓글 알림이 뜬다. 오래달리기님의 댓글이다.
고속도로에는 사람이 다닐 수 없어요. 순찰차에 잡히지 말길.
이런, 이미 잡혔는데. SNS에 순찰차를 탄 사진을 찍어 올리니 동호회 회원들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댓글이 재미있다며 별풍선 달아 줘야 한다고 난리다.
12:08 순찰차는 금방 장성인터체인지에 도착해서 나를 내려주고는 국토일주 꼭 완주하라고 응원을 하면서 떠나갔다.
이건 뭐 본의 아니게 차로 십 여 킬로미터는 이동한 듯싶다.
지금 어디냐는 이공이공님의 전화에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장성인터체인지로 갈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응원하러 와주는 마라톤 회원님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십 여 분 기다리고 있는데 진동이 온다. 도착했는데 어디냐는 이공이공님 전화다. 건물을 묘사하고 있는 자리를 설명하니 서로 다른 말을 한다.
이런, 장성읍에 장성인터체인지가 두 군데였구나.
'국토를달리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61. [7일차⑥ 전남장성군] 선생님 혹시 피로골절인가요? (0) | 2017.04.14 |
---|---|
60. [7일차⑤ 전남장성군] 아니 이 다리를 하고 서울에서 여기까지 달려 왔다구요? (6) | 2017.04.13 |
58. [7일차③ 문수산터널] 아무리 늦어도 5분 페이스이면 총 10여 분이면 통과한다 (8) | 2017.04.13 |
57. [7일차② 전남만수산] 고창담양고속도로가 사라지다 (2) | 2017.04.12 |
56. [7일차① 전북고창] 오늘 나주까지 갈 수 있을까 (0) | 2017.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