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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 화요일, 여섯 번째
장성읍도 꽤 크다. 빠져나가는데 한참 걸린다. 아, 내가 뛰지 못하고 걸어서 그런가 싶다.
이제 좀 한적하니 금방 논길이 나올 것 같은 장소에 무슨 터미널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정형외과가 눈에 들어 온다. 노란색만 생각하면 주변에 온통 노란색만 보인다고 계속 뼈 생각을 하다 보니 정형외과가 어떻게 눈에 쏙 들어 왔다.
그래 한의원에서 진찰을 받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 외과도 들려 보자.
그 동안 혹시나 피로골절은 아닐까 반신반의 하면서 왔는데 이번에 확실히 검사를 받아 봐야겠다. 아니길 빌자. 만일 뼈에 문제가 있는데 강행한다면 그건 용기가 아니고 무모한 객기다. 여기서 과감히 접는다.
17:10 병원문을 열고 들어가니 복도에 조그마한 유리창문이 열려 있고, 그 안에 간호사가 숙련된 목소리로 접수를 안내 해 준다. 의사와 잠깐 면담을 한 후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짧은 순간이라도 발을 해방시켜 주고 싶어 신발과 양말을 벗어 버렸다.
이런 벗자마자 안 쪽에서 내 이름을 부른다. 다시 신기가 귀찮기도 하고 그래서 맨발로 복도를 가로질러 엑스레이실로 들어 갔다.
다리를 요리 조리 돌려가며 촬영을 하는데 마치 동물이 된 듯한 느낌이다. 여러 각도로 꼼꼼히 촬영을 한 후 다시 대기실로 돌아가 담담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몇 분 지났을까? 이번에는 진찰실로 들어간다. 의사선생님의 얼굴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혹시?
선생님 혹시 피로골절인가요?
조급한 마음에 앉자마자 물어 보았다. 의사 책상 옆에 내 발목을 찍은 것 같은 엑스레이 사진이 걸려 있었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어요. 그런데 사진으로는 안 나타나지만 육안으로 볼 때 뼈와 뼈를 연결해 주는 인대가 무척 부었기 때문에 여기서 더 무리하면 정말 피로골절이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하세요. 소염진통제 3일치 처방하니까 식후 드시면 됩니다.
어휴, 다행이다. 아직 뼈가 괜찮다니 그렇다면 강행한다.
의사선생님의 다른 말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뼈에 이상이 없다는 말이 머리 속에 가득 들어왔다. 머리 속에 달려도 된다는 말로 번역해서 들렸다. 광주까지 20여 킬로미터다. 가자.
17:56 전라도의 도로사정은 생각보다 정말 별로 좋지 않았다. 갓길이 너무 좁아서 뛰다가도 차가 지나갈 때는 혹시라도 부딪힐까 봐 몸이 움츠려지곤 한다. 그래도 컨디션이 조금이나마 회복이 되었는지 틈틈이 달리면서 시간을 당겨 본다.
길은 여전히 헤매면서 간다. 국도를 타기 위해서 가로질러 가면 길이 끊겨 있다.
국도가 산을 잇는 고가도로인지 평지에 있는 도로인지 지도만 봐서는 대체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뭐 이제 길 헤매는 건 이골이 났다.
해가 저물어 간다. 아무래도 오늘도 미션 완수는 힘들 것 같다. 지도상으로 보니 나주까지 대략 42킬로미터, 풀코스 거리가 남아 있다. 광주까지도 아직 18여 킬로미터나 남았다.
광주에서 나주까지 약24킬로미터는 내일 숙제로 하는 수 밖에. 오늘은 광주 도심에 도착해서 일찍 휴식을 취하자.
계속 산을 타고 넘는 도로를 이동하다 보니 허기가 진다. 장거리 달리기에서 허기가 진다는 건 자동차에 기름이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다.
지친다. 배가 고프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맥이 빠지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 뭐라도 먹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그래 마라톤 첫 풀코스를 도전할 때 그 때도 그렇게 배가 고팠다. 아무 것도 모르고 무작정 도전한 내 인생의 첫 마라톤 풀코스.
시계를 보니 12시 40분이다. 30킬로미터 표지판을 뒤로 하고 한참을 걷다 보니 뒤에서 호루라기 불며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외치며 뛰어오는 한 무리가 있었다. 5시간 기록을 이끄는 마지막 페이스 메이커다. 같이 약 2~3킬로미터를뛰다가 도저히 무릎 통증을 참지 못하고 결국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달리기 시작한지 이제 4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그런데 좀 걷다 보니 뒤에 걷다 뛰다 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걸까.
하지만 그 이유는 금방 파악되었다. 저 멀리 뒤에서 회수차량이 지나가면서 앉아 있거나 걷고 있는 달림이들을 태우고 있던 것이었다. 순간 오기가 발동했다. 내가 기어서라도 완주하리라.
뛰는 시늉을 하며 걷고 있는데 회수차량이 내 옆에 서서히 서더니 앞문이 스르륵 열렸다.
고생했어요! 이제 그만 타세요! 조금 있으면 교통 통제가 풀려서 못 뜁니다!
기사 선생님이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띤 얼굴로 타라고 손짓을 했다. 열린 문으로 포기한 달림이들이 보였다. 표정은 왠지 좋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 달림이들의 땀냄새와 파스냄새가 어우러져 열린 버스 문을 통해 닭 똥 냄새가 물씬 풍겨 나왔다. 회수차량이 왜 닭장차란 별명으로 불리는지 그제서야 고개가 끄덕여 졌다.
나는 못 탄다. 아니 안탄다. 냄새 때문이기도 하지만 포기한 사람들에 속하는 것도 싫었다.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하고 버스 옆을 묵묵히 뛰어갔다. 얼마 안가 앞에 걷던 달림이 두 명이 차에 탔다. 마음 한 구석에 말로 표현 못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걷다 뛰다 걷다 뛰다 수없이 반복하고 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가슴 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까 닭장차에 그냥 탈걸 그랬나 란 생각도 들었다. 어느새 운영진 측에서는 이제 급수대를 철수하고 있었다. 아마도 33킬로미터 지점이었나 싶다.
멀리서 한 무리가 뭉쳐 응원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옆을 창피하게 걸어서 통과하고 싶지는 않았다. 팔을 앞뒤로 흔들며 뛰는 시늉을 했다. 가까이 가보니 자원봉사를 하는 여학생들이 급수대를 철수하면서 차에 싣던 박스를 뜯어 포기하지 않고 있는 달림이들에게 바나나와 쵸코파이, 이온음료를 주고 있었다.
계속 뛰세요! 완주하는 아저씨 멋쟁이! 그 동안 고생했어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
모든 달림이한테 하는 소리이건만 왠지 나한테만 하는 소리로 들렸다. 양쪽 손에 먹을 것을 받아 들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바나나가 꿀맛이다.
갑자기 세 살배기 아들녀석이 생각났다. 지금 뭐하고 있을까? 힘들면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아내 생각도 났다. 대회 게시판에서 훈련일지를 공유하던 분들도 생각났다. 얼마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시간을 쪼개가며 연습을 했던가. 또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래 포기하진 말자. 나는 멈추지 않는다. 계속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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