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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수요일, 두 번째
08:07 이것이 진정한 강변길이로구나. 영화에서나 볼 만한 풍경들이 눈 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마치 CG(Computer Graphic)을 입힌 것 같다.
여기 널찍이 펼쳐진 들판은 나주평야일 것이요, 저기 멀찍이 물러 앉은 높고 낮은 산들은 광주 무등산부터 금성산을 거쳐 영암 월출산까지 이어지는 첨봉들이리라.
그리고 여기 나주평야 한가운데로 끝이 없을 것 같은 둑길이 한 없이 이어진다.
눈 높이에 있던 해가 어느새 야금 야금 올라가 머리 위에서 작열할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고 나 역시 그 전에 나주에 도착해서 아침 겸 점심을 먹어야지 란 각오로 부지런히 뛰어 간다.
08:16 한참을 뛰어가도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오로지 나 혼자다. 적막함과 고요함 그 자체다. 가끔 저 멀리 이름 모를 새만 두 어 마리 짝지어 날아가는 게 보인다.
나는 지금 홀로 기나긴 길을 뛰어가고 있는 거다. 그래 누군가 마라톤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그랬다. 누가 대신 뛰어줄 수도 그렇다고 부축해 줄 수도 없는 스포츠다.
하지만 누군가 옆에서 같이 뛰어준다는 건 큰 힘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한 결핍은 십 여 년 전 첫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후 절실함으로 바뀌었고 그런 절실함이 오늘 네이버 카페 마라톤114 회원인 하랑대디님을 만나는 결과까지 만들어 낸 셈이다. 얼굴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마라톤114 카페에서 우리는 함께였다. 그리고 이제 곧 국토일주 서부종주 최종 도착지인 목포에서 직접 만나게 될 것이다.
아직 아침인데도 발바닥도 아프고 발목 통증도 점차 심해지고 있다. 족저근막염도 아킬레스건염도 다 예전부터 친구였다. 오! 친구여 그 대 다시 왔는가.
좀 쉬어야겠다는생각에 아무도 없는 자전거길에 그야말로 대자로 뻗어 누웠다. 알게 뭐냐. 여기는 다 내 길이다.
눈을 감았다. 햇살이 눈꺼풀에 환하게 내려 앉는다. 수풀에 잠겨 있던 강 바람이 미세하게 볼을 적시고 이따금 고요함을 깨고 곤충소리가 또렷이 들려온다. 편하다. 이대로 그냥 잤으면 좋겠다. 이 모든 순간이 완벽하다.
풀 코스를 완주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뛸 때마다 발바닥이 시큰거리고 아파왔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족저근막염 같았다. 한동안 훈련을 쉬어야 한다는 말도 있었고 또 어떤 사이트를 보니 그럴수록 더 달려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도대체 어떤 말이 맞는 거야.
마라톤관련 사이트를 검색해 보면서 이론적인 부분도 또 실제로 훈련하는 방법도 터득해 갔다. 책도 몇 권 사서 읽어 보았다. 마라톤을 선수가 아닌 취미로 하는 사람을 마스터스라고 부르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그리고 마라톤 거리 42.195킬로미터 즉, 마라톤 풀 코스를 3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것을 서브 쓰리라고 하는데 마스터스 사이에는 대단히 영예로운 기록이며, 마라톤을 도전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서브 쓰리라는 것을 목표로 훈련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서브 쓰리를 하려면 도대체 백 미터를 몇 초에 뛰어야 하는 거야?
계산해 보니 25초 이내로 백 미터를 연속해서 421번 달려야 한다. 아니 이게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나는 5시간 36분 풀코스 주자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뭔가 가슴 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도전 의식이 올라 오고 있었다. 나도 한 번 서브 쓰리란 걸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계산 상으로는 전혀 감을 못 잡겠지만 평소 천천히만 달렸으니 속도를 내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같이 달리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강하게 들었다. 나처럼 마라톤이 좋아 달리는 사람들과 공통된 주제로 같이 얘기를 나누고 나란히 훈련을 하고 싶었다. 네이버를 검색해 보았다. 마라톤과 관련된 카페가 없다.
아니, 그 많은 카페 중에서 마라톤 카페 하나 없다니. 내가 만들어야겠다.
먼저 제목을 정해야 했다. 뭘로 할까? 좀 그럴 듯한 이름이 필요하다. 마라톤에 너무 목숨을 걸거나 전문적이지는 않되, 온라인으로 서로 정보를 주고 받으며 가까운 지역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가끔 만나 달리기도 하고, 꼭 훈련이 아니더라도 만나 사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평생 달리기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온라인 장소, 그런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이름 뭐 없을까? 아, 어렵다.
한참 고민 끝에 마라톤을 매일 매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의 마라톤114로 정했다. 마라톤114 좋네.
그렇게 네이버에 마라톤114카페가 탄생되었다. 2004년 3월 30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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