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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토요일 세번째

 

 

13:58 가다가 좀 쉬자고 했다. 걸어야겠다고 말했다. 맨발이 멈췄다. 그래 페이스는 국토일주 11일째 하고 있는 사람한테 맞추자고. 걷다 보니 이정표가 하나 나온다.

14번 국도 포항 28km.

 

 

오늘의 목적지인 포항까지 아직 28킬로미터가 남아 있다.

시간을 보니 오후 2시다. 그래, 이 정도 속도라면 어두워지기 전에 포항에 도착할 수 있다.

, 그런데 이제 문제는 배가 고파온다. 그러고 보니 아까 휴게소에서 먹은 빵과 음료수가 전부다. 다른 두 명은 그런 데로 참을 수 있겠지만 체력이 바닥난 나한테 허기가 진다는 것은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된 것과 마찬가지다. 배고파서 못 뛰겠다는 말은 못하고 겨우 허거덕 쫓아가는데 이제 한계가 슬슬 오기 시작한다.

 


14:05 , 이게 뭐야 이거 오디아냐?

갑자기 수운몽님이 달리다가 멈춰서 왠 나무에 달린 작고 빨간 열매를 따먹기 시작한다. 맨발도 돌아 오더니 같이 따먹는다.

 

 

국도 옆 갓길에 이런 열매가 달려 있는 나무가 엄청 많다. 수운몽님은 여기 산딸기도 있네 하면서 오디와 산딸기 따먹는 방법을 알려준다.

아니 형님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어 내가 시골출신이잖아, 어렸을 때 이런 거 엄청 먹고 자랐어.

세 남자는 정말 그 수많은 오디와 산딸기, 심지어 복분자까지 수운몽님의 가르침에 따라 따먹으며 허기를 채운다.

 

 

 

 

역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다.

이후로는 수운몽님이 말하지 않아도 세 남자가 달리면서 열매가 보이면 멈춰서 따먹으면서 달린다. 그래 그러면서 또 달린다.

 

14:57 아니 이 사람들은 내가 지금 열흘이 넘게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산길과 논길을 가리지도 않고 오백여 킬로미터를 달렸다는 사실을 아는가 모르는가 그냥 내달린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나도 또 같이 달린다. 도저히 못 달릴 것 같으면 못 가겠다 이야기를 하겠는데 또 절뚝거리면서도 달려나가니 그게 요상한 일이다.이제 시간은 오후 3시가 넘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 산 열매로 허기는 가셨지만 그래도 밥을 먹지 않으면 세 명이 모두 퍼질 수도 있다.

 

 

15:13 산길에 난 도로를 따라 내달려가고 있는데 환청이 들리는가 메아리인가 저 아래 산허리 즈음에서 노랫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산을 완전히 내려가려면 한참을 더 가야 하는데 이 산속에 이 무슨 소리인가 싶다.

그 소리는 내려갈수록 점점 커지더니 이제 분명하게 들린다.

이 소리는 분명 뽕짝이다.

 

산허리에 허름한 간이 휴게소가 있고 거기에 밴드가 있는지 손님들이 쉬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아닌가?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세 남자가 동시에 만세를 부르며 허리춤을 추면서 휴게소 쪽으로 뛰어갔다.

신난다. 여기서 휴게소를 발견하다니 이게 왠 사막에 오아시스이며 진흙탕 속에 다이아몬드냐.

꿍짝 꿍짝 꿍짜라 꿍짝 네 박자 속에……

 

가까이 가보니 휴게소라고 할 수도 없을 1층짜리 허름한 매점 앞 공터에 전혀 통일성 없는 탁자와 의자들이 불규칙하게 놓여 있고 거기에 관광버스 한 대에서 내렸음직한 아줌마 아저씨들이 밴드의 반주에 맞춰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 메뉴를 보니 라면에 맥주, 막걸리가 전부다.

어찌되었든 좋았다. 뭔가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어디냐. 세 남자는 만면에 웃음꽃이 활짝 펴서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라면 세 개 콜.

 

 

신발 벗고 양말 벗고 라면을 허겁지겁 들이켜고 있던 우리는, 아니 나는 어느 순간 누군가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손님들 중에서 우리 세 남자는 이방인이었다. 자그마한 배낭을 메고 달려서 들어오자 마자 라면을 시켜서는 며칠은 굶은 사람마냥 흡입하는 모습이 천상 그들 눈에는 이상할 법도 할 것이다.

 

 

막걸리 한잔씩 하며 라면을 먹고 있는데 매점 아저씨가 와서는 에너지 드링크제와 박카스를 가져다 준다.

, 아저씨 우리 이거 시킨 적이 없는데요.

저기 어떤 아저씨가 시키고 갔어요.

 

매점 아저씨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춤추던 어떤 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준다.

아마도 국토일주하는 것에 대해 경상도식의 응원을 한 것이 아닐까? 아마도 안 보는 척 하면서도 부착물을 보았으리라. 하긴 그건 비단 그 아저씨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라면 국물까지 싹싹 비우고 일어 났다. 그래도 쉬니까 몸이 회복이 된다. 다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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