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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일요일. 국토일주 열 이튿날, 포항을 지나 월포해변까지 이오이오님과의 동반주
목표경로: 포항시 남구 오천읍-포항고속터미널(10km)–흥해읍사무소(10km)–칠포해변(북구 흥해읍)(7km)–월포해변(청하면 월포리)(10km) 총 37km
6월 12일 일요일 첫번째
05:32 오늘 여정은 포항시 남구 오천읍에서 이오이오님과 함께시작한다. 포항 중심을 지나 흥해읍을 통과해서 칠포해변을 거쳐 월포해변까지 가는 것이 오늘 이동 코스다.
아침에 발걸음이 가볍다. 절로 콧노래가 흥얼거린다.
동반주를 할 때 편한 것 중 하나는 나 혼자 길을 찾지 않아도 되는 점이다. 이오이오님은 출발할 때부터 핸드폰을 뚫어지게 보며 네비게이션으로 길 찾기에 바쁘다. 이오이오님 고향이 경상도라니 더욱 걱정이 없다. 물론 동부종주길은 해파랑길이라 불리는 자전거길로 가면 되기에 길 찾기에 그리 큰 어려움은 없지만 어찌되었든 길 찾아 확인하면서 가는 건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
서부종주할 때는 그렇게 말 상대가 그립더니 동부종주하면서는 말복과 들을 복이 동시에 터졌다.
남자와 이토록 하루종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국토일주를 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르리라. 어제는 남자 세 명이, 오늘은 둘이서 수다가 작렬하고 있다.
남자들은 술자리 아니면 대화가 없다고? 천만의 말씀. 난 어제도 하루종일 수다를 떨었고 오늘 역시 새벽부터 수다를 떨고 있다. 이오이오님의 입심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경상도 남자가 원래 이렇게 말을 잘 하는가 싶다.
06:50 오천읍에서 출발한지 어느덧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수다를 떨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르게 포항시에 입성했다. 정말 1분도 안 쉬고 계속 이야기하면서 이동하다 보니 거대한 산업단지가 눈 앞에 펼쳐 있다. 아하 여기가 포스코라 불리는 포항제철이로구나.
정문처럼 보이는 곳에서 인증사진을 한 방 찍었다. 평생 말로만 듣던 포항제철을 이제서야 보다니. 포항제철 담벼락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는 인도가 이국적인 정취를 풍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라 얼마 안가 포항제철 정문이 또 있다.
아니 형님 여기는 후문이에요? 후문이 무슨 정문 같아요?
여기도 정문이야. 포항 도심 전체가 포스코라고 생각하면 돼. 저기 저 멀리 보면 정문이 또 있지? 그런 정문이 수 십 개야. 엄청 커. 직원만 해도 2만명이라고.
아니 초등학교 사회책에서 보고 가끔 뉴스에서나 보았지 실제로 이렇게 보니 그 규모에 놀랍기만 하다.
포항제철은 1968년 설립되어 2002년 포스코로 사명을 변경하였고 단일철강기업으로는전 세계 3위라고 한다. 어제 잤던 곳 오천읍 인구수가 5만명이라고 하니 오천읍 인구의 절반이 모두 포스코를 다닌다는 말이 된다. 그것도 간난아이며 노인까지 모두 합쳐서 말이다. 서울 촌놈 많이 놀라고 있다.
07:30 형산강다리를 건너니 이제 포스코의 영역을 벗어난 것 같다.
어휴, 거의 4킬로미터를 넘게 포스코 담벼락만 보면서 이동한 셈이다. 이제서야 아파트도 보이고 주택도 보이고 일반 건물들도 보인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아무리 동부종주라 하더라도 도심을 벗어나면 먹을 곳이 없을 수 있다.
포항터미날 근처로 이동해서 국밥집을 들려 아침을 후딱 해치우고 다시 이동한다.
09:22 7번 국도를 따라 계속 이동한다. 남자들의 수다는 국내외 정세부터 군대이야기까지 모든 장르를 아우르며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전라도를 통과할 때와 달리 경상도 특히 포항은 국도 양 옆에 인도가 기가 막히게 잘 되어 있다. 계속 이렇게 길이 나 있다면 하루 종일 밤새도록 국도 따라 갈 수도 있겠다. 가끔은 뛰기도 하고 또 속보로 걷기도 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오늘 목표지는 월포해변이다. 이동 거리는 약 40킬로미터 남짓, 동반주하는 날인데 여느 때보다 이동거리가 짧은 편이다. 그래도 목표대로 간다. 오늘처럼 편하게 가는 날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오이오님 달릴 때 보니 양손에 배낭끈을 잡고 뛴다. 유심히 안 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달리는 자세가 좀 어색하다.
아하 배낭이 러닝용이 아니다.
왜 그런 배낭을 가져왔냐고 물으니 집에 배낭이 없어 아들 것을 들고 왔다고 한다.
알고 보니 마라톤 시작한지 1년이 채 되지도 않아 배낭 메고 뛰어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란다.
아니 그러면 국토일주 동반주는 어떻게 한다고 결정하신 거에요?
그냥 꼭 한번 동반주 같이 해보고 싶었어. 이번 국토일주에 동반주를 하려고 집과 회사에다가 얼마나 정성을 많이 들였는지 몰라. 아내한테 허락도 받아야 하고 회사에도 미리 휴가를 내야 했거든.
이오이오님은 여전히 양쪽 손으로 배낭끈을 쥐어 잡고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달리고 있다.
잠깐 멈춰서 이오이오님의 배낭을 들어 보니 무게가 꽤 나간다. 가슴과 배에 고정하는 끈도 없는 이런 배낭을 메고 달린다고 왔으니,참 당황스럽다. 하지만 마라톤에 대한 열정 하나로 서울에서 여기까지 동반주한다고 온 걸 어찌하랴. 와 준 것 만으로도 고맙고 마라톤에 대한 순수한 열정에 감사할 뿐이다.
그 전에는 무슨 운동을 했냐고 물어 보니 원래 세미프로급 골퍼인데 몸무게가 너무 나가서 조깅수준으로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지금 몸무게는 나랑 얼마 차이나지 않는 것 같은데 예전에는 지금의 1.5배였다고 하니 그럼 대체 그 전에는 얼마나 나갔던 거야?
아무튼 지금 내 망가진 체력과 이오이오님의 무거운 배낭이 서로 비슷하니 이제 같은 조건으로 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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