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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토요일 네번째
17:47 이번에는 수운몽님이 좀 쉬었다 가자고 한다.
보아하니 맨발은 아직 쌩쌩하고 수운몽님이 좀 지친 듯싶다. 나야 부상이나 통증과 친구 된지 오래라 왠만큼 아프거나 힘들어서는 그냥 가겠으나 어쨌든 오늘은 급하지 않다.
오늘의 목적지인 포항 오천읍 도심까지는 10킬로미터도 채 안 남은 듯하다. 무리해서 갈 필요가 없다. 어디서 좀 쉴 곳이 없을까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찾아 보니 마침 조금 앞에 성당이 하나 있어 들어갔다.
하나님, 어린 양들이 너무 힘들어 잠시 휴식을 취하고자 들어 왔습니다. 어여삐 여기시어 주님의 울타리 안에서 편히 쉬게 하여 주옵소서.
성당 마당 그늘에 신발과 양말을 벗고 퍼질러 앉아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자연스럽게 오늘 국토일주에 대해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생전 처음 가보는 길을 따라 터널을 통과하고 산 넘고 강 건너 사십여 킬로미터를 달린 것에 대해 맨발과 수운몽님의 두런두런 정감스런 이야기의 결론은 결국 도전과 희열이란 단어로 갈무리가 되었다.
국토일주는 하루하루 의미를 못 찾은 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단순한 흥미거리임을 넘어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게 하는 도전이자 희열이었다.
18:11 저녁 6시가 좀 넘어서 포항 오천읍에 안착을 했다. 중간 중간에 쉰 것을 감안하면 산길 논길 오르막 내리막을 배낭메고 거의 6분 페이스 이내로 이동한 셈이다.
역시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더 의지가 되고 힘이 된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하루였다.
이오이오님이 포항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이오이오님은 국토일주 떠나기 전 출정식에서 한번 보고는 처음 만남이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백화점 디스플레이 전문가이자 디자이너로 마라톤 카페에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카페 플래카드도 만들고 활동이 왕성하다고 했다.
이오이오님은 오늘 밤 나와 하루 자고 내일과 모레 이틀 동안 경상북도 해안가를 접수할 계획이다.
월요일을 휴가 내고 국토일주 동반주를 하기 위해 여기 포항까지 오다니, 마라톤에 대한 열정인가 삶에 대한 열정인가.
19:26 오천읍 도심에 모텔을 하나 잡아서 오늘의 여독을 풀고 이오이오님을 기다렸다가 저녁을 같이 하러 나갔다. 오늘은 네 명의 남자가 한데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날이다.
저녁 7시반쯤 됐을까? 저 멀리 예술가 아니랄까 베토벤 머리스타일의 한 남자가 뛰어온다.
반갑다. 다들 입꼬리가 입에 걸린다. 낯선 도시 낯선 거리에서 이오이오님을 만나 남자들만의 뜨거운 포옹을 하고, 수운몽님과 맨발이 쏘겠다며 삽겹살집으로 들어갔다. 네 남자가 모여 마치 잔치라도 벌인 것처럼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그 날 최고의 안주거리는 단연코 마라톤이었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가라, 란 말이 있다.
오늘 11일차 국토일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그렇게 재미난 동화책 한 권 읽은 것 같은 기억으로 마음에 묻고 간다.
오늘 하루를 온전히 동반주하고 간 수운몽님과 맨발친구에게 무어라 감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
고통마저 즐긴다고 하지만 홀로 가는 이 길은 절대 쉽지는 않다. 외롭고 고독하고 고통스럽고 처절하다. 그런 길을 기꺼이 함께 해 준 두 분에게 하늘의 큰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란다. 또 바톤터치해서 이오이오님이 내일부터 이틀간을 함께 한다.
행복하다. 그저 그 뿐이다.
떠나기 전 통장을 아내에게 맡겨 놓았기에 아까 낮에 연락해서 불우아동 후원계좌에 얼마가 입금되었는지 찍어서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후원계좌통장은 카드도 없고 인터넷뱅킹이나 폰뱅킹이 안되기 때문이었다.
원래 국토일주 달린 거리만큼 혼자서 불우아동을 후원하고자 했지만 마라톤 카페 회원과 SNS 지인들에게 국토일주를 공개하면서 작은 손길도 같이 하기로 했기에 모인 금액이 자못 궁금하기도 했다. 큰 부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1킬로미터 달리면 1천원씩이니 열흘 동안 1킬로미터를 달려서 1천원을 후원해도 좋고, 10킬로미터를 달려서 1만원을 후원해도 좋았다.
달리면서 주변의 불우아동을 한번 생각해 본다는 그 자체가 중요했다. 아무튼 이제 국토일주도 절반이 지난 만큼 중간 공유를 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을 제외하고 어제까지 지난 10일동안 내가 달린 거리는 GPS 측정거리로 451.89킬로미터였다. 물론 실제 이동한 거리는 훨씬 더 많을 것이나 GPS로 후원금 기준을 정한만큼 451890원을 입금했다.
현재 통장에 찍힌 금액은 662892원이었다. 그 동안 많은 분들이 천원씩 만원씩 알게 모르게 입금을 했다. 6월 한 달 모집하는 이 후원금은 마지막 날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서 불우아동에게 전달할 것이다.
액수를 떠나 이 후원금은 불우아동한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될 것이다.
11일차 경로: 경북 경주시 나하해변-경북 경주시 봉길해변(7km)–경북 경주시 감포읍 나정해변(6km)–포항 오천읍사무소(30km) 총 43km
"사소한 것들이 모여 사건이 된다. 하찮은 만남, 사소한 만남은 없다. 인생을 변화시키는 운명적인 만남도 처음에는 하찮고 사소한 우연에 불과했다. 지금 만나는 사람, 지금 머무는 장소, 지금 나눈 대화가 어쩌면 미래를 바꾸고 역사를 바꿀 아주 중대한 것들일 수 있다."
김이율 [청춘, 홀로 서면 외롭지 않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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