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일 토요일, 일곱 번째 22:21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머리가 지끈거린다. 눈을 떠 고개를 들어 보니 온 몸이 축축한 채로 수풀 속에 누워있다. 먼지 같은 수증기가 내려 앉고 있다. 안개 속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내가 왜 누워있지? 아, 그래 이런 바보, 지금 나는 국토일주 중이었잖아. 내가 바위를 타고 넘다가 걸려 나뒹굴었던 것이 틀림없다. 머리부터 떨어지면서 정신을 잃었던 것이리라. 눈이 잘 안 떠진다. 머리 옆 부분에 통증이 너무 심해 손을 대보니 진득한 액체가 만져진다. 혹시 피인가? 저기 저 편에 밝은 빛이 있는 것이 헤드랜턴인 듯싶다. 벗겨지면서 수풀 아래로 튕겨나갔나 보다. 아니 어떻게 넘어졌길래 헤드랜턴이 저기까지 갔을까? 기어가려 하는데 오른쪽 손목이 ..
6월 18일 토요일, 여섯 번째 22:12 몽롱한 상태에서 달려가다 보니 종주 자전거길을 놓쳤다. 표식을 따라 제대로 따라갔다고 생각했는데 국도와 교차하는 지점에서 표시가 산으로 간다. 어라,자전거길이 해안가 쪽으로 안 가고 산 위로 이어지다니. 어쨌든 가보자. 끊어질 듯한 발목을 끌고 표식을 찾아 몇 백 미터를 올라갔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가 없다. 그저 사방이 캄캄한 산길이다. 어떻게 할까, 계속 산을 타고 올라가서 자전거 길을 찾아 볼까, 아니면 다시 돌아가서 국도를 타고 갈까? 이 상황에서 산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 건 미아 되기 십상이고 야간에 국도를 타는 건 내가 꺼려하는 최후의 방법이다. 어떤 선택을 하던지 체력이 극한으로 떨어진 지금 이 시점에서는 뭐든 최악의 선택이다. 국토일주하..
6월 18일 토요일, 다섯 번째 19:45 방조제를 따라 한 시간 여 걸어가니 주문진항이 다가온다. 빽빽하게 정박해 있는 고깃배들, 이 또한 해질녘 노을이 장관이다. 붉은 기운이 회오리처럼 항구를 감싸고 있다. 20:05 저녁 8시가 되어 가니 아니나 다를까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간다. 이제 소돌항을 지나간다. 해파랑길이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쪽으로 빙 돌아간다. 태양도 이제 안 보인다.조금 있으면 야간주 복장으로 환복해야 한다. 하지만 좀 더 천천히 준비해도 무방할 듯 하다. 동해안은 가로등도 촘촘히 박혀 있고 해변가 가게들의 불빛이 밝기에 헤드랜턴을 안 켜도 주변 인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0:14 여기가 주문진해변인가? 저녁 8시가 넘어 어둠이 절반의 세상을 장악할 시간인데도 해변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