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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2일 일요일. 국토일주 열흘 전, 무더위 테스트

 

 

 

 


D-day 10


아무리 준비 없이 떠나는 국토일주라 하더라도 땡볕에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를 알아 보는 건 안전을 위해서라도 필요했다. 어지간하면 점심시간 전후로 해서는 이동을 안 하겠지만 혹시 부득이하게 해를 껴안고 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 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알아야 했다. 일기예보는 오늘 최고 기온이 26도를 넘어선다고 했다.


일요일 오전 10, 서울 도심의 햇살은 벌써부터 따갑다. 조끼배낭의 무게는5킬로그램에 맞췄다. 열흘 후에 그 정도의 무게를 메고 똑같이 달리게 될 것이다. 물은 1리터만 갖고 달린다. 국토일주 할 때는 도심과 도심 사이에 산길이나 논밭길 또는 국도를 따라 이동하게 될 터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마시고 먹을 수 있는 매점도 음식점도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1리터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정오다. 출발한지 2시간이 지났다. 마치 수십 시간은 된 듯 하다. 신길에서 노량진 용산 남영을 거쳐 충정로 신촌을 지나쳐 달리고 있다.

20여 킬로미터나 달렸을까? 태양은 정수리 바로 위에서 작렬하고 있고, 햇빛은 모든 세상을 환하게 하다 못해 빛이 날 정도로 내리쬐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물과 사물이 녹아 흐느적거리고 있는 시공간 속을 나는 허우적거리며 달리고 있다. 속도를 아무리 늦추어도 호흡이 돌아오지 않는다.

정수리에서 노는 숨은 떨어지지 않고 온 몸에 흐르는 땀방울만 지면에 떨어지고 있다. 이제 물도 다 떨어지고 물이 없으니 목도 더 마르고 배도 고프다. 사실은 이동하는 동안 일부러 물을 안 채우고 있고 배고픔도 참고 있다. 실제 국토일주를 하며 도심과 도심 사이를 통과할 때는 산 또는 논밭 외에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이 같은 땡볕에서 계속 달린다는 것은 자살행위다. 걷는 것도 힘들다. 머리 속에서는 멋지게 달리는 내 모습을 연상해 보지만 그 또한 바램이다. 실제 나의 체력은 그냥 이 정도인 거다.

몇 발자국 안가 이제 걷는 시늉 조차도 서강대교 남단에서 멈췄다. 아니 무너져 내렸다.

 

 


 

 

계단에 앉아 바라 본 한강은 야속하게도 잘만 흘러간다. 너는 수 천 년을 어떻게 한결같이 흐르고 있니.

멍하니 한강을 바라보고 있는 머리 속에서는 온갖 의문점과 걱정거리가 한가득이다. 6월이 되면 한 낮 기온이 30도가 훌쩍 넘어갈 것이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상태에서도 뙤약볕에 20킬로미터 이동하고 퍼지는데, 19일간 매일 쉼없이 이 같은 땡볕에 어떻게 이동하지? 급수는 어떻게 하지? 식사는 어떻게 하지? 탈진되었을 때는 어떻게 하지? 혹시라도 다쳤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지?

온갖 예기치 못한 문제의 무게에 짓눌려 숨을 쉴 수가 없다. 이거 너무 무모한 짓을 하겠다고 한 거 아닐까? 앉은 자리 바닥에 떨어지는 땀방울을 바라 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 보았다. 바람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하얀 실구름 두 개가 서로 가로질러 교차해 있다. 저건 뭘 뜻하는 걸까. 그래 나 한마디로 X됐다. 그래도 간다. 나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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