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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 토요일. 국토일주 열여드레 전, 후원금과 예산 준비
D-day 18
예산을 준비해야 했다. 숙박비는 되도록 여관비 기준 내에서 하루 3만원씩, 식비는 하루 세끼 3만원씩 잡아서 20일 기준으로 120만원 정도를 국토일주 비용으로 마련하고 기타 간식 및 필요 물품 구매는 이 한도 내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체크카드는 아내 카드와 내 카드 두 개를 가져가기로 했다. 아내는 자기체크카드에 돈을 넣고 쓰기를 바랬는데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내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샀는지 핸드폰 문자로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굳이 연락을 하지 않아도 소재 파악이 용이한 방법이라 생각되어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리고 불우아동 후원 목표금액을 정해야 했다. 19일간 1300킬로미터를 이동하는 것으로 가정했을 때 1킬로미터에 1000원씩 130만원 그리고 작년 책 출간을 하고 받은 인세를 포함해서 200만원 정도를 후원하고 싶었다.
저녁 식사를 하다가 아내에게 솔직히 말했다. 한 달 동안 회사를 안 나가면서까지 국토일주를 하는데 이런 소중한 행동과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후원 금액을 말했다.
동갑인 아내는 나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인생의 동반자이고 전우이자 동지였다. 이십 대 중반 어느 여름 그 푸르름보다 더 싱그러웠던 젊은 날, 캠퍼스 운동장에서 아내와 데이트를 하다 말고 트랙을 내달리며 소리쳤다.
나 잘 달리죠? 내가 오래 달리기는 잘 해요.
아내는 그런 나를 보고 좋아라 발을 구르며 박수를 쳤었다. 사귄지 몇 달 안되었을 때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갑자기 달렸는지, 아내는 그런 나를 보고 왜 그렇게 좋아라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3년의 연애 끝에 가진 것 없이 청혼을 했고 아내는 승낙을 했다.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 장가를 가기 위해서 세례를 받았다. 장인어른은 뼈속까지 천주교 신자였으며 노숙자를 위한 무료급식소인 토마스집에 매일 자원봉사를 나가는 것을 하늘이 내려준 업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었다. 십 여년간 그런 모습을 보아도 별 감흥이 없었던 나는, 장인어른이 몇 년 전 폐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에 노숙자 분들이 찾아와 부조금을 내는 걸 보게 되었고, 아내와 나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가진 것에 매이지 않고 나눔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먹고 살 정도만 되면 그 이상의 돈은 기부와 후원을 하며 살아 가는 것. 어쩌면 아내와 나는 정말 이상(理想)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달 쉬면서 달린 거리만큼 불우아동 후원을 하겠다는 말에 아내가 고개를 끄덕인 이유였다.
저녁 내내 전국지도에서 눈을 못 떼고 있는 나에게 아내는 집에는 언제 돌아 오는 거냐고 물어 왔다. 별 생각 없이 1일 0시에 집에서 출발해서 19일 오전 10시에 서울 여의도에 입성한다고, 그 동안 자주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그저 알겠다고 답했다.
가족 모두가 잠든 새벽 2시, 잠이 안 온다. 부엌에 물 마시러 가다 보니 첫째 녀석 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온다. 또 침대에서 노래 듣다가 불을 끄지 않고 잠이 들었나 보다. 몇 번 잔소리를 했었지만 올해 들어 그 무섭다는 중2병을 앓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 지켜보기만한지 있는지 오래다. 불 끄러 들어갔다가 벽에 걸려 있는 달력에 우연히 눈이 갔다. 아직 시험날이 멀었을 텐데 달력 중간 어느 날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 6월 8일이다. 이 날이 무슨 날이지? 내가 한창 달리고 있을 땐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니 애들 학교에서 무슨 행사를 하는 날인가 싶다. 아내가 어련히 알아서 챙기겠지.
물을 마시고 침대에 누웠는데 눈이 말똥말똥하다. 천장에 전국지도가 그려지고 국토일주 경로가 빨간 선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갑자기 그 위에 첫째 녀석의 달력이 오버랩이 된다. 어, 그런데 국토일주 경로를 잇던 빨간 선이 달력6월 8일에 가더니 동그라미가 그려진다. 아뿔싸, 이제 기억났다. 6월 8일은 아내의 생일날이었다. 이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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