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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목요일, 두 번째
09:49 오르막 내리막 길이 한참 반복되더니 앞에 제일 가파른 내리막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발목이 성치 못하니 오르막보다 내리막길이 더 힘들다. 부상 입은 발목에 계속 신경이 쓰인다. 발을 디딜 때 마다 욱신거리는데 다치지 않으려 바짝 긴장하다 보니 꽉 경직된 자세로 힘겹게 내려가게 된다.
얼마나 달려 내려갔을까? 이제까지와는 좀 다른 느낌의 바람이 불어온다.
이건?
바다 바람이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 보니 저 멀리 수평선이 드리워져 있다. 해안가 길이다.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 여기서부터는 강원도 삼척시 입니다.
10:03 해변가에 도착하니 강원도 입성을 축하하는 표지판에 떡 하니 서있다.
반갑다. 강원도. 드디어 강원도에 들어 왔구나.
해안가 길을 따라 한참을 달려가다 보니 또 길이 끊겨 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내륙으로 들어 간다.
원덕읍을 통과하는데 이런 제길 또 햇빛이 난다. 이제 태양에 노출된 피부 전체적으로 따가워져 오기 시작한다. 이래서는 오래 못가는데 덜컥 겁이 난다. 그래도 이판사판이다. 발목이 괜찮을 때 뛰지 못하면 또 언제 뛴단 말인가.
11:27 어느덧 호산시외버스터미날을 지나 임원읍으로 달려 간다. 계속 오르막 내리막 길이 반복된다. 임원까지 4킬로미터가량 남았다. 자, 가자.
11:54 내리막 길을 한참 달려 나가는데 아래쪽에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다바람이 몸의 열기를 식혀 준다. 어느덧 해안가가 가까워졌나 보다.
임원터미날까지 1킬로미터 남았나 싶은데 저만치 백여 미터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손을 흔드는 사람이 보인다.
여자치곤 짧은 머리 스포티한 옷차림, 자전거를 옆에 두고 헬멧을 벗는 모습이 꼼짝없는 고등학교 친구 선아다.
반갑다. 갑자기 힘이 난다. 친구 있는 곳까지 힘차게 뛰어 내려간다.
달려가는 내 모습이 카메라에 담긴다. 전문 사진기자인 선아는 백업을 자청하고 서울에서 여기까지 왔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반가움, 한편으로 약간의 어색함이 자연스럽게 뜨거운 악수로 이어지고 포옹을 대신한다. 악수하는 선아의 손아귀 힘에서 든든함과, 보통 어느 남자보다도 강하고 단단한 의리가 느껴진다.
임원터미날 근처로 가서 선아가 사준 설렁탕을 후딱 해치웠다.
현건아 오늘 백업 제대로 할게 힘껏 뛰어봐, 선아가 이야기하고 나는 오케이, 짧게 대답한다.
그래 오늘 제대로 한번 달려보자.
내리막에서는 선아의 자전거 뒤를 보고 따라가고, 오르막에서는 내가 힘을 내 앞질러 본다.
13:00 오르막 내리막을 너무 빠르게 달렸나. 목으로 신물이 넘어온다.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 내리막이다 싶으면 오르막이고, 오르막이다 싶으면 내리막이 계속 이어진다.
내리막에서 선아가 쏘고, 오르막에서 내가 겨우 따라잡는 형국이다.
힘들어 걷고 싶지만 그래도 힘닿는 한 뛰는 이유 중 하나는 선아가 저 멀리 앞 뒤에서 달리는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때문이기도 하다.
14:10 거의 무아지경으로 장호해변 근처를 지나고 있는데 삼척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 정일이한테 전화가 왔다. SNS에서 안부 여쭙는 정도 사이인데 처음 전화를 해서는 어디냐고 묻더니 대강 위치를 설명하자 알겠다고 한다.
어라?
몇 분 안지나 차를 몰고 왔다.
세 명이 편의점 앞에 앉아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즐긴다. 정일이 녀석 회사에서 일하다가 왔단다.
고등학교 다닐 때 몇 번 마주친 적은 있는데 졸업이후 얼굴 본 건 처음이다. 고등학교 친구가 꿈을 쫓아 달려 삼척까지 왔는데 꼭 얼굴 보고 응원해주고 싶었댄다.
차에서 뭔가 잔뜩 들고 와서는 각종 에너지바와 에너지드링크를 풀어 놓는다.
게다가 녀석, 오늘 저녁을 꼭 같이 하자고 한다.
고맙다고 알겠다고 하고 보내고, 선아와 나는 다시 달린다.
마을을 통과하고,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국도를 지나, 해안가를 타고 묵묵히 달려 나간다. 오후 두 시가 넘어가건만 해는 아직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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