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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국토를 달리는 겁니다.
2016년 5월
국토를 달리는 겁니다.
올해 1월, 팀장이 버킷리스트를 물어 봤을 때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달려서 국토일주를 하는 것, 그것은 어렸을 적부터 어렴풋이 꿈꿔왔던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었다.
원 없이 달려보는 것,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기 전까지 계속 달리는 것, 그 다음 날 일어나서도 계속 달리고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사건들을 경험하는 것 말이다.
낮에도 밤에도, 더운 날에도 추운 날에도, 바람이 불 때도 비가 내릴 때도, 무서움 공포 두려움 외로움 고독 힘겨움 슬픔 환희 희열 그리움 애틋함 경이로움 등의 온갖 감정들을 경험해 보며 달리고 싶었다. 뭐라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원 없이 달려보는 행위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시간이 필요했고 용기가 필요했고 마음의 여유가 필요했다.
먼저 준비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차일피일 미루던 것이 어언 십 년이 되었다. 본사 와서 몇 년간 회사일을 핑계로, 퇴근 후는 글쓰기를 핑계로,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해야 한다는 핑계로 1년간 달리는 월간 거리 합계는 10킬로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마라톤 42.195킬로미터 풀코스를 완주하기 위한 거리 합계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월간 200킬로미터라고 한다면 턱없이 부족한 운동량이었다.
세월이 흘러 갈수록 체력이 점차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초조했다. 40대에 접어들수록 체력저하는 눈에 띄게 떨어졌다. 운동 후 회복도 느리고 근력도 예전 같지 않았다. 나는 금방 50대가 되고 60대가 될 것이다. 이러다 국토일주라는 내 일생의 버킷리스트 하나가 날아가는 건 아닌가, 내 인생은 이렇게 뭐 하나 못하고 그냥 흘러가는가란 조바심이 났다.
아내한테는 예전부터 말해 왔었다. 아내는 허락하지도 반대하지 않았다. 거의 20년을 같이 살아 온 이 사람은 내가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서든 실행에 옮긴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난 하겠다고 결심한 건 꼭 해야 직성이 풀렸고, 평상 시에도 누누이 실천의 중요성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터였다.
비록 잘 하지는 못했지만 10년을 넘게 영업과 영업관리를 했었고 이후에는 본사 교육팀으로 자리를 옮겨서 3년 동안 영업조직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기도 했다.
강의를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건 말과 실행의 관계 즉, 언행일치의 중요성이었다.
어느 순간 진정한 강사란 자기가 한 말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걸 득도하듯이 깨달은 이후, 강의를 접었다.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고 말한 그대로 살아간다는 확신이 들 때 다시 강의를 하겠노라 다짐을 했다.
나의 마지막 강의는 매번 그랬듯 우리 마음 속 어린아이를 안아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2015년 6월이었다. 그리고는 본사의 운영기획 관련 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마흔세 살 유난히도 햇빛이 내리쬐던 유월 어느 날, 천안연수원에 대략 마흔 명 정도가 강사의 강의 마지막 말 한마디를 놓칠까 귀 기울이고 있었다.
우리 내면에는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는 매우 여리고 섬세해서 쉽게 상처를 받곤 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저 다른 사람에만 신경쓰느라 이 어린아이를 잊고 삽니다.
내 안에 있는 이 아이는 나의 괜찮은 척하는 행동에 가슴앓이하고 어루만져 주지 않음에 분노하고 알아봐 주지 않아 슬퍼하고 있습니다. 문득 표출되는 뾰족한 말 한마디는 그 어린아이의 말입니다.
이 아이를 꼬옥 안아주세요. 그리고 미안하다고 말해 주세요. 용서한다고 말해 주세요. 고맙다고 말해 주세요. 사랑한다고 말해 주세요.
이것은 아주 오래 전 고대 하와이인이 해온 의식인데요. ‘호오 포노포노’라고 하며 지금은 심리치료로도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
호오’는 삶을 뜻하고 ‘포노포노’는 완전함을 뜻합니다.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에게 미안해 용서해 고마워 사랑해 라는 네 가지말을 해줌으로써 삶의 완전함을 이룰 수 있다고 하네요.
자 먼저 자기 자신을 두 팔로 꼬옥 안아주세요. 그리고 눈을 감으시고 본인의 이름을 먼저 부른 후 네 가지 말을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한테 소리 내어 해주시면 됩니다. 자 따라 해 보세요.
현건아, 미안해, 용서해, 고마워, 사랑해.
강의 말미에 항상 하던 내용이었다. 교육의 목적으로 매번 했었지만 나는 정작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가 위로를 받았는지, 아니 내 안에 어린아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리 신경 쓰질 않았다.
그리고 1년 후 회사에서 맡은 프로젝트가 일단락되는 2016년 5월, 그 달 초 나는 정식으로 휴가 신청을 냈다. 6월 한 달을 통째로 쉬겠다고 말이다. 이유는 달려서 국토일주를 하기 위해서.
나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휴가 신청에 임원 및 팀장들은 어쩌면 흔쾌히 어쩌면 마지못해서 허락을 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안 동료 일부는 실제로 그렇게 못할 거라 생각했고 일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며 일부는 부러워하며 대단하다고 그랬다. 집에서 허락하냐, 고도 많이 물어봤다. 그럴 때마다 제가 결혼 하나는 잘 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어찌되었든 주위의 시선이 그리 곱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난 그저 더 늦기 전에 실컷 달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달리고 달리고 달리다가 정 못 달리게 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되었다.
그저 달려서 세상을 보고 싶었고 달려서 세상을 느끼고 싶었다. 대한민국 국토를 내 두 발로 되도록 최대한 많이 밟아 보고 싶었다.
"당신의 꿈을 꼭 붙잡아라.
꿈이 죽으면 인생은 부러진 날개를 가진 날지 못하는 새와 같으니까."
랭스턴 휴즈(Lanston Hughes, 시인)
인생을 새라고 한다면 꿈이 없는 건 날개 없는 새와도 같지 않을까? 사람은 꿈이 있기에 살아 갈 수 있다. 미래를 보는 힘, 그것이 비전이라면 꿈이 없는 사람은 삶의 비전이 없는 셈이다. 마음의 맹인이 되어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꿈을 꾸자. 꿈을 많이 꿀 수록 우리의 인생은 풍요로워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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