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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일 일요일. 국토일주 닷샛날, 구간을 재조정하다.

 

조정 계획: 전북 익산시청김제시청(20km)–신태인읍사무소(16km) 36km

 

 

6월 5일 일요일, 첫 번째 

 

07:50 아침이다. 창문을 통과한 햇살이 눈꺼풀을 간지럽힌다. 몇 시나 되었을까?

창 밖을 보니 해가 중천에는 떠 있는 것 같다. 몸이 천근 만근이다.

여기는 어디? 아 어제…… 어제 밤을 생각하니 고개가 절로 가로 지어 진다. 실눈을 뜨고 여관방 주위를 둘러보니 여긴 컴퓨터도 없고 정수기도 없는 정말 옛날 여관이다.

윗몸을 일으켜 앉아보려다가 말았다. 이제 다리만 문제가 아니라 온 몸이 다 뻐근하다. 그러고 보니 어제 옷도 안 벗고 침대에 쓰러져 누워 잤다. 침대에 그대로 쓰러져 자기를 벌써 몇 번이다.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어서 아무리 코드를 꽂아 놓아도 충전이 안 되는 느낌이랄까. 체력이 바닥나서 쉰다고 될 일이 아닌 듯싶다. 원 없이 달리기 위해서는 지금 시점에서 남은 일정 중 하루 이동거리를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 핸드폰, 제길 핸드폰 충전도 안 해놓았다. 약도 없는 핸드폰이 저절로 꺼졌다가 켜졌다가 한다. 이 놈도 주인 컨디션 따라가는 구나. 내가 힘을 내야지. 그래 일어나자. 일어나 앉는데 저절로 끙! 하고 신음소리가 난다. 거울에 비친 몰골이 말이 아니다. 어제 그냥 자는 바람에 다리에 진흙이 덕지덕지 묻어있고 온 몸에 냄새가 진동을 한다. 세탁을 안 한지 며칠이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다. 일단 씻자.

화장실까지 가는데 발걸음 마다 신음소리가 입술사이로 삐쳐 나온다. 족저근막염이 틀림없다. 이제까지 평발임에도 십여 년간 마라톤 잘 했었는데 초장거리를 이동해보니 이제야 왜 평발이 오래 못 달린다는 말을 듣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문득 마라톤카페에 올라온 난이님 응원댓글이 생각났다.


유명한 전략가 중 한명이 한 말인데 군인들은 이 말을 항상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갑니다.

모든 전쟁의 계획은 첫번째 총성과 함께 사라진다.

삶이 꼭 계획대로 하는 것이 아니듯 상황에 맞춰서 일정과 코스를 잘 조율할 것으로 믿습니다.


난이님은 군인이다. 최근 대대장이 되었다는 게시글을 어디서 읽은 것도 같은데 그러기엔 너무도 순박하게 생긴 얼굴이 떠올랐다.

어찌되었든 스쳐 읽었던 그 댓글이 지금 내 마음 속에 착 달라붙어 계속 곱씹어 보게 된다.

 

모든 전쟁의 계획은 첫 번째 총성과 함께 사라진다 라.

 

당연히 그 말은 계획은 현실에 맞게 계속 수정되어야 한다는 뜻이리라. 그렇지, 살아감에 있어 힘들다고 포기란 없듯이 말이다. 어차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아닌가? 죽는 거 아니면 지금 현실에 맞춰 계획을 계속 재조정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구가 오래됐는지 불빛이 깜박깜박하는 화장실에서 끙끙거리며 샤워를 하고 때 구정물로 얼룩진 옷과 모자를 손 빨래하면서 머리 속에 계속 맴도는 생각, 경로 수정을 해야겠다. 

 


08:28 오늘 오전은 이동하지 않고 구간을 조정하는 시간을 갖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한 나의 생각을 마라톤 동호회 카페와 SNS에 정리해서 올렸다. 다양한 반응이 나왔으나 사실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나는 나만의 길을 갈 거니까, 난 나만의 인생을 살 거니까.

구간을 조정할 거라는 것과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이해해줄 것으로 믿는다는 내용,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분의 응원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는 점, 그 감사함을 오래 기억하겠다는 글을 올리고는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체력도 바닥이지만 그보다도 발목이 문제였다. 발목 인대에 뭔가 날카로운 바늘이 쑤시는 것만 같은 통증. 그 놈의 발목통증만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허공에 맴돌던 멍한 시선이 창문 밖 파아란 하늘에 꽂혔다. 일요일 전라북도 익산의 하늘이었다.

정말 파랗구나. 아름답다. 그래 난 달리는 거 자체를 즐기고 있는 거지. 낯선 장소, 낯선 거리, 낯선 하늘,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보고 느끼는 것에 찬란한 행복을 느끼고 있는데 뭘 걱정하고 고민하나. 발 길 닿는 데로 가면 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의 기대 그런 거에 매이지 마라. 내가 즐거우면 된다.

 

09:41 지도를 여관 방에 주욱 펼쳐놓고 다시 경로를 잡기 시작했다. 나흘 동안의 경험치를 살려서 19일까지 이동할 수 있는 최대한 현실적인 코스를 잡아야 했다. 지금의 내 체력상태와 주로상황을 감안한 플랜 비를 수립해야 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얼마나 자신의 의도대로 완벽한 삶을 살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의 목표를 끊임없이 되새겼는가이다."

 

스티븐 코비 (Stephen R. Covey, 동기부여가)

 

 

우리는 신년 목표를 세워놓고 여름쯤 되어서는 어떤 목표를 세웠는지도 잊어버리고 다시 쳐다보기도 민망해 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다.

'도대체 목표는 세워서 뭐해? 어차피 달성하지도 못하는데'

이는 한 번 세워 놓고 지속적인 수정 보완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목표를 정하면 이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 계획을 세워야 한다. 계획 역시 한 번 세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끊임없이 점검하고 이에 따른 수정과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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