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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 화요일, 일곱 번째
그래 12 년 전 그 때 첫 풀코스 마라톤 도전할 때 달리면서 많이도 먹고 많이도 울었다.
아, 그 순간 머리를 때리는 생각이, 아까 장성읍에서 점심 때 이공이공님이 사준 탕수육 남은 게 있지 않은가?
아싸, 배낭에서 탕수육을 꺼내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으면서 가는데 이야, 산해 진미가 따로 없다. 이게 바로 최고의 요리구나. 사람 마음이 참 단순하지. 탕수육 입에 물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18:12 다 산이고 다 논밭이다. 가도 가도 저 멀리 지평선에 보이는 건물 숲이 가까워지지가 않는다. 저기가 광주 도심일 텐데 계속 달리는데도 거기서 거기다.
그래도 낮에 장성에서 발목에 피도 뽑고 소염진통제도 먹고 그래서 그런지 달리면 또 달려진다. 어두워지기 전에 도심에 도착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 탓일까?
19:35 어둑어둑해질 때 겨우 광주 빌딩숲에 도착했다.
오, 광주는 정말 도시답다. 아파트가 끝없이 이어져 있고 식당가도 유흥가도 많다. 저녁에 불빛이 서울 못지않게 휘황찬란하다.
보통 때는 도시에 도착하자 마자 제일 처음 보이는 여관에 짐을 풀었건만 오늘은 원래 나주까지가 목적지였던 만큼 광주도심을 통과해서 최대한 나주 가까이 묵기로 한다.
화요일 광주 도심의 저녁을 느끼며 도로주를 한다. 실로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이 보니까 왠지 힘이 나서 아스팔트 위를 또 인도 위를 막 달린다. 사람들도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나 또한 사람들을 처음 보는 것처럼 즐기고 있다.
어린 아이과 같이 장보러 나온 젊은 엄마, 공부하러 어쩌면 놀러 어디론가 가는 학생들, 다정하게 손 붙잡고 지나가는 연인들, 뭘 잘 못했는지 부인한테 혼나고 있는 남자, 가격 흥정에 성공하고 좋아라 하는 아줌마, 떨이라고 외치는 생선가게 아저씨,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부부, 다 큰 아들을 연인 보듯 흐뭇해 하는 아줌마, 헐렁한 츄리닝을 입고 조깅하는 중년의 아저씨, 한껏 멋을 부린 학생으로 보이는 아가씨들.
세상의 온갖 군상(群像)들의 살아 가는 행태(行態)는 어딜 가나 다 똑 같은 법이다.
나 역시 그들 중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 뭘 그리 대단하다고. 다만 각자 본인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고 순간에 집중하며 순간을 즐기면 그걸로 될 것을. 광주도 서울도 시골도 도시도 사람 사는 곳은 다 똑 같은 것을.
그래 이 느낌 12년전 첫 풀코스 도전하던 그 때 그 느낌이다. 그 때 나는 인천 도심을 가로지르며 비슷한 감정을 경험했다.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며 한참을 뛰다 걷다 뒤를 돌아보니 아무리 살펴봐도 뛰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정말 내가 마지막이구나. 추월 당할 일도 없고 회수차량도 벌써 지나갔고 차비도 없고 어차피 짐 찾으러 경기장에 가야 하니까 기어서라도 완주는 하겠다 싶다.
인도 옆 잔디밭에 드러누웠다. 그냥 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분 누워 있다가 다시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34킬로미터 지점에서 35킬로미터 지점까지 그처럼 1킬로미터가 멀게만 느껴진 적이 없었다. 30분은 걸린 것 같다.
이젠 교통 통제도 풀려서 인도로 뛰어야만 했다. 차들이 통제가 풀리기만 기다렸다는 듯이 옆으로 쌩쌩 달린다. 이제 무릎 통증보다도 온 몸에 힘이 남아 있지 않다. 또 잔디밭에 드러누웠다. 그냥 꼴찌하자.
5분여 누워 있었을까. 다시 일어나서 걷는다. 37킬로미터 지점, 고가에서 마지막 급수대가 철수하는 것이 보였다. 차가 짐을 싣고 떠나기 전에 이를 악물고 뛰어 가서 바나나를 몇 개 챙겼다. 간발의 차였다. 바나나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주말에 놀러 나온 주위 아파트 주민들이 나를 보고 나도 그들을 본다. 운영진이 철수해서 마라톤 대회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상황을 알 수 없는 동네 사람들은 러닝셔츠 배때기에 번호판을 달고 인도를 터벅터벅 걸어가는 내가 이상했으리라. 너무 목이 말라 주위 경찰아저씨한테 물 좀 달라고 하니 마라톤 뛰는 사람임을 알아보고 얼른 이온 음료를 구해다 주었다.
생명수가 따로 없구나. 이렇게 또 살아 난다. 이제 5킬로미터가 남았다. 나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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