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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수요일. 국토종주 여드렛날, 영산강을 따라 광주에서 나주거쳐 목포까지
수정 목표: 광주시청-전남 나주시청(27km)–나주 동강초교(20km)–삼향면사무소(20km)-목포버스터미날(4km) 총 71km
6월 8일 수요일, 첫 번째
06:20 나는 지금 광주시내를 벗어 나고 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도심이든 시골이든 아침의 맑은 기운은 언제나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뭐, 물론 기분 탓일 것이다. 힘들 때는 모든 게 귀찮지만,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보는 모든 것은 예뻐 보이지 않겠는가?
아무튼 광주의 아침도 마찬가지다. 모든 게 새롭고 모든 것이 신기하다. 광주의 거리, 광주의 돌멩이, 광주의 참새, 광주의 나무와 풀, 심지어 광주 길바닥에 꼬무락거리는 광주 지렁이까지.
어제 밤에는 내 인생의 첫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는 꿈을 꿨다. 꿈에서 아내도 봤다. 당시 둘째 준상이를 임신하고 있던 아내는 세살배기 첫째 인상이를 안고 응원하러 와주었다.
십 년도 훨씬 넘은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그 때 그 희열과 환희를 잊지 못한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아내도 나도 어렸었다. 오랜만에 아침에 기분 좋게 잠에서 깼다.
오늘은 그동안 밀려 왔던 숙제를 다해야 하는 날이다. 익산에서 새롭게 국토일주 구간을 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계획보다 거리가 조금씩 밀리다 보니 오늘 광주에서 목포까지 자동차 이동거리로 70여 킬로미터를 가야 한다.
물론 실제로 이동하게 되면 거리는 더 짧아질 것이다. 매번 그랬듯이 강을 만나든 산을 만나든 일직선으로 가로질러 갈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오늘 중으로 목포에 도착해서 목포종합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하룻밤을 잔 후 다음 날 바로 동부종주를 시작할 계획이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한 한 가지를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것이 있다. 왜냐면 오늘은 국토일주를 허락한 아내의 생일날이기 때문이다. 허락을 다 받고 떠난 여행이지만 아내의 생일 날 남편은 국토일주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니. 선물은커녕 옆에 같이 못 있어 주는 것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영상편지를 찍어서 보내기로 했다. 엔지를 한 두어 번 낸 후 그나마 나은 영상으로 보냈다. 계속 찍어봤자 지금 이 몰골에서 더 나아질 것은 없었다.
‘여보오 생일 축하해요오 방긋 내가 돌아가서 잘 할게요오 사랑해요오’
06:50 오늘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오늘은 어떤 난관과 역경과 장애가 있을지, 오늘 하루만큼은 정말 별 일없이 지나갔으면.
너무 과한 행운의 연속이 과분하게 느껴졌었나, 더이상 도와줄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까. 하긴 그 동안 고비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수호천사들이 나타났었다.
오늘 도착예정지인 목포에는 마라톤 카페 회원인 하랑대디님이 기다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과연 이 몸을 이끌고 70킬로미터가 되는 거리를 오늘 안에 갈 수 있을지. 아니, 할 수 있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의 미션은 초이스가 아니고 머스트 인거다. 서부종주 마지막 종착지인데 가야 한다. 그래 가자.
07:46 지금 광주 도심을 빠져 나와 영산강 자전거길에 들어 왔다. 주변에 건물은 하나도 없다. 수풀이 우거진 벌판에 오롯이 길 하나만 길게 나 있다. 가끔 지나가는 이름 모를 새와 벌레들만 보인다.
지도를 보니 나주까지 이런 초원같은 들판이 20킬로미터 거리다. 머리 속에 두 가지가 떠오른다. 마치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 그리고 오늘도 제대로 고생하겠구나 란 생각. 헐, 미쳐버리겠다. 이런 느낌 아마 느껴보기 어려울 것이다. 자연과 합일치된 느낌을.
영산강 자전거길은 담양댐과 영산강하구둑을 잇는 자전거도로다.
담양댐은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대성리에 있고 영산강하구둑은 거의 목포에 근접해 있으니 그 길이만 해도 거의 100킬로미터가 넘는다. 나주까지는 이 길로 따라 가고 이후 목포까지는 가로지를 계획이나 매번 그랬듯이 계획은 계속 수정될 것이기에 이번에도 일단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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