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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일요일 세번째
이제 또 누구한테 물어 보나 싶은데 멀리 저기요,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뒤돌아 봤더니 아까 그 검정색 스타일의 학생이다.
헤매실 것 같아 걱정이 되어서 다시 되돌아 왔어요.
이런 마음씨 고운 학생이 다 있나. 그런데 다시 길을 알려 주는데 들어도 잘 모르겠다. 차라리 우리를 안내해 줄 수 있냐는 부탁에 한 박자 쉬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오케이, 감사 땡큐. 이것도 인연인데 기념 사진 한방 찍자.
이제부터 세 명이 같이 이동한다. 학생은 자전거로, 우리 둘은 달려서.
이름은 박준형, 포항 흥해읍에 사는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이란다. 말하는 것도 똑 부러지고 또래답지 않게 속이 깊고 배려심이 있어서 좀 더 이 친구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졌다. 아마 이오이오님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으리라.
고등학생 2학년이니 공부 때문에 지치지 않느냐는 말에 어려서부터 꿈이 산업디자이너로 정하고 그 생각을 하면 힘든 것이 없다고 본인을 소개한다. 어쩐지 뭔가 옷 입은 거라든지 스타일이 남달라 보이더니. 이오이오님이 그 말을 듣고는 반색하며 말 폭풍이 이어진다.
아, 그렇지,이오이오님이 산업디자인의 거장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오이오님이 산업디자인 업계 전반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 거리를 풀어 놓는다. 이야기를 가만 듣다가 나도 한 마디 한다.
준형아, 여기 형님한테 잘 보여. 산업디자인업계의 거물이니 너한테 큰 도움이 되지 않겠니.
물론 이 친구가 업계에 입문할 때쯤이면 아마 이오이오님이 은퇴할 시기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세월은 흘러가고 자식이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출산율이 낮아지면 그 사회의 동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생각난다. 십 년 이십 년 후 이 사회, 이 나라를 책임지는 사람은 지금 십대들일 것이다. 지금은 내 또래들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지만 세대는 교체된다.
집에 있는 아들 녀석이 생각났다. 준형이와 딱 3년 차인 첫째 인상이는, 요즘 흔히들 말하는 중2병이라는 홍역을 앓고 있는 중학교 2학년이다. 인상이가 고2 되었을 때 저만큼 인성과 지식과 배려심을 갖출 수 있을까.
11:57 정오가 지나가기 일보 직전이다. 지글거리는 태양이 머리 바로 위까지 떠오르고 있다. 썬 크림을 덕지덕지 발랐건만 얼굴도 달아오르고 햇빛에 노출된 모든 피부가 후끈거린다.
자전거로 앞서 길을 안내해주는 준형이를 따라 얕은 언덕도 넘고 한적한 도로도 지나고 샛강도 건너고 산길을 지나 논두렁 길을 따라 계속간다. 가끔 내가 힘을 내서 달려 앞으로 나가 보기도 하고 그러다 내가 걸으면 같이 보조를 맞춰서 이끌어 준다. 발바닥도 쑤시고 발목도 부서질 것 같지만 셋이서 재잘거리며 가다 보니 통증도 아픔도 잊고 간다.
고등학교 2학년, 25년이 넘게 나이 차이가 나는데 어찌 그렇게 대화가 잘도 통할 수 있을까? 공부 이야기부터 사회 전반에 대한 이야기까지 온갖 장르를 넘나 들며 대화가 가능하다니.
그렇게 1시간을 같이 동반주했을까. 저 멀리 지평선인지 수평선인지 가로로 길게 평평한 직선이 보이는 듯 하다.
준형이가 손을 들어 가르킨다.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이 해안가에요.
그래 드디어 칠포해변이다.
13:18 칠포해변 도착. 광활한 바다가 눈에 들어 온다. 하야디 하얀 모래사장이 그 앞에 길다랗게 깔려 있다. 모래를 밟는 뽀그작거리는 느낌이 발 끝으로 전해진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신발과 양말을 벗어 던지고 해변가를 달려 바다로 뛰어 들어 갔다. 다리를 휘감는 차디찬 바닷물의 청량감이 뼛속까지 느껴진다. 이오이오님도 뒤 따라 바다에 입수한다. 바닷물에 얼음을 잔뜩 담아 놓았는지 어쩌면 이렇게 차가울 수가 있을까? 마치 계곡물에 발 담근 것처럼 시리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더니 다리가 얼었는지 감각이 없을 정도다.
이오이오님과 똥꾸힘 포즈로 사진 한 방 찍고 얼른 바닷가로 나왔더니 느낌이 어째 발목이 좀 나아진 것 같다. 냉찜질 효과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아직 개장 전이라 해변가에 사람도 저 멀리 한 두 명 보이고 바다에 입수한 사람도 없다.
먼 발치에 빨간 바지에 웃통을 까고 해병대 머리를 한 두 청년이 보이긴 하는데 멀리서 보아도 건장한 몸매가 순찰대원 아니면 구조대원이 아닌가 싶다. 준형이는 바닷가를 워낙 많이 와봐서 그런지 별 감흥이 없어 보이고 이오이오님과 내가 바닷가에 입수하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신기한 듯이 바라 보고 있었다.
준형아 너도 이리로 와서 바닷물에 발 담궈 봐. 음청 시원하다. 바닷가에서 우리 사진찍자.
이오이오님과 내가 암만 꼬셔도 입가에 미소만 가득할 뿐 모래사장에 자전거를 세워 놓고는 가만히 서서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 둘이 발 씻고 준형이가 있는 쪽으로 갔다.
어, 그런데 순간 멀리 있었던 해병대 머리를 한 청년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 오면서 손을 흔드는 것 아닌가? 우리가 뭘 잘못했나. 바다에 들어가면 안 되었던 건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가까이 와서 눈이 딱 마주치더니 하는 말이 본인들은 스무살 해병대 이병들이고 훈련 중 휴식 시간에 잠깐 나왔다가 우리를 멀리서 보았는데 혹시 사진 찍어줄 사람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어 본다.
뭐지? 순간 어이도 없고 의아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호의를 받아 주어야 하지 않는가 싶어 고맙다고 감사말을 하고 나서 준형이와 이오이오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해변가를 배경으로 똥꼬힘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그런데 해병대 청년들이 사진을 찍어주고는 가지를 않고 머뭇거린다. 왜 그런가 싶더니 본인들도 좀 찍어달라고 한다.
저희들이 지금 훈련 중이라 핸드폰이 없거든요.
아하, 그래서 우리한테 와서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나 보구나. 최대한 재미있는 포즈로 사진을 몇 방 찍어주고 해병대 청년들과도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어 그런데 이 사진을 어떻게 보내죠?
아 제 핸드폰 번호 알려드릴 테니까 문자로 보내주시겠어요? 아니면 저장해 두셨다가 카톡으로 보내주세요.
오케이. 이름이?
하동현입니다.
연락처를 서로 주고받고 헤어지면서 들은 생각은 오늘 참 젊은 친구랑 인연이 닿는 날이네. 18살 박준형, 20살 하동현, 국토일주를 안 했으면 이런 친구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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