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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일 월요일, 국토종주 엿샛날, 이제 전라남도를 향하여

 

 

수정 목표: 김제시청-신태인읍사무소(16km)-정읍시청(16km)–전남 북이초교(22km)-장성군 장성읍(18km) 72km

 

 

 

6월 6일 월요일, 첫 번째

 

 

난간 위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무릎을 펴는 그 순간이었다.

등 뒤에서 칼 바람이 사람소리처럼 웅웅거리며 불어왔다. 몸에 중심을 잃고 앞으로 기우뚱거렸다.

어…어…다리를 움직여서 중심을 잡으려고 하는데 양말이 난간에 얼어붙어 움직이질 않았다. 팔을 휘적거리며 중심을 잡아보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 이거 죽는구나. 정말 이렇게 죽는구나.

 

그 순간 내 망막에 새겨진 건, 시커먼 하늘과 검푸른 강줄기를 배경으로 다리 한 가운데 서 있는 어린아이였다.

죽음의 찰나 수 십 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머리 속에 스쳐 지나가는 그 순간, 그 어린아이는 내 옆에서 하얀 눈송이를 맞으며 서있었다.

나는 기억한다. 그 아이의 하얀 티셔츠와 바가지 머리를. 그리고 나를 살린 건 바람이었다. 앞에서 세차게 불어 닥친 바람.

강 아래로 떨어지는 나를 마치 마술처럼 들어 올려 다리 난간 뒤편으로 밀어 버린 바람.

덕분에 난간에 얼어 붙었던 양말이 벗겨지면서 나는 뒤쪽으로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살았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문득 생각나는 건 내 옆에 서 있던 그 어린아이는?

없다. 내가 또 잘 못 본 것인가? 환상을 봤던 것일까?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살아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정말 죽었을 수도 있었다는 공포심, 그리고 내 옆에 있었던 어린아이의 존재감에 대한 궁금함이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난간에 붙어 있는 양말을 뜯어내듯 떼내서 주머니에 집어넣은 다음 냉골인 신발에 맨발을 쑤셔 넣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집에 왔을까?

눈떠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집이다. 꿈을 꾼 건가. 거실 소파에서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꿈이라고 하기에는 한강대교에서의 일이 너무 생생하다.

주머니 속 축축한 양말이 손에 잡혔다. 이건? 아이와 아이엄마를 찾았다. 정말 아무 일없이, 정말 아무 일도 없이 너무도 평안하게 자고 있었다. 시계 바늘은 새벽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05:23 또 꿈을 꿨다. 소스라쳐 눈을 떠보니 여관방이다. 12년 전 그 날도 꿈이었을까. 아니, 그 날 주머니 속에서 만져진 축축하게 젖은 양말은 한강대교에서의 일이 실제라는 증거물 아니었을까?

나는 아직도 한강대교에서의 일이 꿈이었는지 생시였는지 확신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때 내 옆에 서있던 그 어린아이는 절대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다. 어린아이의 존재가 내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널뛰기를 하고 있다. 잊자.

 

어제는 김제시 도심에서 일찍 방을 잡고 여유 있게 저녁식사를 한 후, 방에 다시 들어와서 팔굽혀 펴기 30개와 그 전날 못다한 세탁을 하고 일찍 잠을 청했다. 저녁 열 시경 잠이 들었으니 그래도 대략 일곱 시간 반은 잔 셈이다.

 

짐을 꾸리는데 어제 잠자기 직전 손 빨래한 속옷과 양말이 아직 축축하다. 드라이기로 몇 분을 말려봤지만 별 수 없다. 안 마른 양말을 배낭 겉에 붙들어 매고 방문을 나섰다.

 

 

06:03 나는 지금 이름 모를 마을을 지나 젖은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 야트막한 시골 산길을 하염없이 걸어가고 있다.

 

여명이 밝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하늘에는 푸르스런 기운이 감돌고 있다. 길가 양 쪽에는 정사각형 모양의 밭이 테트리스 모양으로 띄엄띄엄 붙어 있고 그곳에는 파릇한 싹들이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었다.

 

 

 

 

이른 아침 수풀에 맺힌 이슬에서 묻어 나오는 박하향내가 청량하다.

산기슭 너머 저 멀리 개 짖는 소리, 송아지 소리, 암탉울음 소리가 희미하게 귓가를 간지럽힌다. 눈에 가득 들어 오는 파아란 하늘과 푸르런 산이여. 그래 이런 느낌이야.

고대인들이 사냥을 위해 먼 길을 떠나는 그런 설렘, 아름다운 미지의 세계를 향해 한발자국씩 나아가는 그런 긴장감. 어제 저녁나절 김제시의 여유로움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초록산천(草綠山川)! ,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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