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 목요일. 국토일주 후원금 전달 6월 마지막 날 오후 5시30분, 시속방장과 한주와 함께 신길 3동사무소에 방문했다. 스물두 살 한주는 후원금 전달해 보는 게 처음이라신기하다며 연신 사진을 찍는다. 국토일주 불우아동 후원금 계좌에 최종 모집된 금액은 3640000원이었고 우리는 이 소중한 후원금에 우리의 마음을담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불우아동한테 전달할 것이다. 담당자는 열 두 가구에 익명으로 전달될 거라고 했다. 글쎄, 이것이 큰 금액인지 적은 금액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신길동의 불우아동에게 나눔의 작은 불씨가 되길 소망할 뿐이다.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누는 삶을 꿈꾸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나누는 삶이란 기부와 자원봉사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단어가 나눔이라고 ..
6월 26일 일요일, 국토일주를 하며 느낀 점 정리 며칠 동안 국토를 달리며 찍은 사진과 메모를 보며 힘들었던 순간, 환희에 찼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돌이켜 보면 그 땐 내가 무슨 정신으로 뛰었나 싶다. 체력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매일 달린다는 것은 정말이지 미친 짓이었다. 그것도 정해지지 않은 길을 찾아가면서 말이다. 국토를 달리면서 정신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극한과 풍요로움을 골고루 맛 보았으나 육체적으로는 실제 지옥을 맛 보았다. 하지만 국토를 달리면서 얻은 깨달음의 크기는 수십 배 수천 배에 달하니 그에 비할 바는 아니다. 국토를 달리며 깨달음의 가지 수보다도 깨달음의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이 중요하다. 내 짧은 인생을 통틀어서 그 깨달음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
에필로그. 나의 국토일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6월 20일 월요일. 하루가 지났다. 국토일주 한 것이 그저 하루 밤의 꿈같다. 새까맣게 탄 다리와 절뚝거리는 발목만이 어딘가 가서 고생을 된통 하고 왔다는 것을 알려줄 뿐 언제 내가 매일 수십 킬로미터씩 어떻게 길 찾아 달렸는지 그저 아스라한 기억 너머의 일이다. 이제 병원 가서 소염진통제 처방받고 물리치료도 받고사우나 가서 냉찜질 온찜질도 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책상 앞에 앉아 찬찬히 생각해 본다. 불우아동 후원금도 정산해야 하고실제 이동거리와 GPS로 측정한 거리도 구간별로 정리해야 한다. 19일간 770.8킬로미터의 거리가 가민GPS에 기록되었다. 물론 실제로 이동한 거리는 800킬로미터가 훨씬 넘을 것이다. 국토일주를 하며 핸드폰에 저장된..
6월 19일 일요일, 다섯 번째 01:57 드디어 도착했다. 집 떠난 지 19일만이다. 오늘 국토일주 최종 목적지인 양양터미날이다. 아, 다왔다. 핸드폰을 꺼내 양양터미날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데 손에 힘이 없으니 자꾸 흔들린다. 몇 번을 망치고 나서 그 중 가장 크게 웃은 얼굴사진을 첨부해서 SNS에 글을 올렸다. 사진만 보면 정말 아주 멀쩡한 상태로 보인다. 정말이지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닌 거다. 국토일주 19일차, 현재시간 6월 19일 새벽 1시 59분. 동부종주 최종 목적지인 양양터미날 도착 엄지척, 국토일주 피날레다.오늘 강릉에서 양양까지 60킬로미터 마무리.가민GPS는 50킬로미터 좀 넘는 거리로 기록. 02:34 목적지에 도착하니 담담해 진다. 터미날 바로 옆 편의점에 거의 기다시피 들어가..
01:49 저 멀리 도심의 불빛이 보인다. 드디어 도심이다. 지평선에 넓게 깔려 있던 불빛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가까워지면서 블럭 모양으로 형체를 갖추어 나간다. 다리 하나가 보이는데 다다라 보니 양양대교다. 그래 이제 1킬로미터 남았다. 이제 인도로 걸어 간다. 가로등불이 밝다. 이제 헤드랜턴을 꺼도 된다. 현건아, 이제 다 왔어. 오른 발목에서는 계속 피가 흘러내려 양말 전체가 피로 적셨는지 걸을 때마다 질퍽한 느낌이 든다. 괜찮다. 몸 전체에 안 아픈 곳이 없으니 이건 안 아픈 것과 마찬가지다. 양양 도심의 불빛이 아른거린다. 불빛이 흔들리는 건지 내가 흔들리는 건지, 사거리 횡단보도에 신호등불이 아른거린다. 빨간 불이다.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지만 자동적으로 멈췄다. 금방 파란 색으로 바뀌었다..
6월 19일 일요일, 세 번째 01:30 핸드폰을 꺼내 다시 지도 앱을 켜고 현재 위치를 확인해 본다. 한참을 온 것 같은데 아직도 양양터미날까지는 2킬로미터가 남았다. 한 시간 동안 2킬로미터를 이동한 셈이다. 더 이상 못 가겠다는 생각과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생각이 계속 충돌한다. 순간 발목이 끊어질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너무 아파 눈물이 나오려던 걸 참았다. 이 정도 갖고 울면 이제까지 온 게 뭐가 되나? 끝까지 간다. 죽어도 간다. 절름발이 식으로 거의 기다시피 가고 있지만 나는 앞으로 계속 이동한다. 이제 약간의 내리막이다. 내리막이 더 힘들다. 이제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라는 생각이 든 순간 오른다리에 힘이 풀리며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눈이 스르륵 감긴다. 평온하다. 현건아, 여기까지 잘 ..
6월 19일 일요일, 두 번째 01:11 따라 오는 것 같다가 십 여 분이 지나자 드디어 개 소리가 멀어졌다. 긴장이 풀리고 다리 힘도 풀린다. 제 자리에 주저 앉았다. 아, 짜증난다. 국도로가자니 차들이 너무 쌩쌩 달리고, 옆에 나란히 있는 샛길로 가려니 개와 마주치고. 너무 무리해서 달렸다. 디딜 수도 없는 오른 발목으로 죽자 사자 달렸더니 이제 조금도 힘을 줄 수가 없다. 이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신히 지탱하고 있던 정신력마저 무너지니 이제는 서있을 힘조차 없다. 그냥 여기에서 자면 안될까? 여기서 자면 죽으려나? 길가 평평한 잔디로 몸을 움직여 누워 버렸다. 둥그런 달이 이동하는 구름 사이로 모습을 보였다가 감췄다가 한다. 달이 참 동그랗다. 아, 오늘 6월 19일이 음력으로 5월 15일이..
6월 19일 일요일. 국토일주 열 아흐렛날, 양양 그리고 서울로 6월 19일 일요일, 첫 번째 00:01이제 국토일주 19일째로 접어 들었다. 여기 도로에는 진짜 사람없다. 한 발 한 발이 고통스럽고 지옥 같은데 문제는 졸음이 밀려 오다는 것이다. 정말 칠흑(漆黑)처럼 캄캄한 밤에 으슥한 산길에서 조는 것도 문제지만 도로로 들어가서 졸다가 차에라도 치면 답도 없다. 그냥 골로 가는 거다. 정신 바짝 차리자. 길가 양 옆에 우거진 수풀에서는 헤드랜턴을 비출 때마다 부스럭거리며 야생동물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국토일주 초기 처음에 야간주를 하면서 혼쭐났던 서부종주길이 상기되어 괜스레 빨리 통과하고픈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만하면 국토일주하면서 담력이 정말 극강 중에서도 최극강으로 진화했다. 간혹 산속 ..
6월 18일 토요일, 일곱 번째 22:21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머리가 지끈거린다. 눈을 떠 고개를 들어 보니 온 몸이 축축한 채로 수풀 속에 누워있다. 먼지 같은 수증기가 내려 앉고 있다. 안개 속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내가 왜 누워있지? 아, 그래 이런 바보, 지금 나는 국토일주 중이었잖아. 내가 바위를 타고 넘다가 걸려 나뒹굴었던 것이 틀림없다. 머리부터 떨어지면서 정신을 잃었던 것이리라. 눈이 잘 안 떠진다. 머리 옆 부분에 통증이 너무 심해 손을 대보니 진득한 액체가 만져진다. 혹시 피인가? 저기 저 편에 밝은 빛이 있는 것이 헤드랜턴인 듯싶다. 벗겨지면서 수풀 아래로 튕겨나갔나 보다. 아니 어떻게 넘어졌길래 헤드랜턴이 저기까지 갔을까? 기어가려 하는데 오른쪽 손목이 ..
6월 18일 토요일, 여섯 번째 22:12 몽롱한 상태에서 달려가다 보니 종주 자전거길을 놓쳤다. 표식을 따라 제대로 따라갔다고 생각했는데 국도와 교차하는 지점에서 표시가 산으로 간다. 어라,자전거길이 해안가 쪽으로 안 가고 산 위로 이어지다니. 어쨌든 가보자. 끊어질 듯한 발목을 끌고 표식을 찾아 몇 백 미터를 올라갔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가 없다. 그저 사방이 캄캄한 산길이다. 어떻게 할까, 계속 산을 타고 올라가서 자전거 길을 찾아 볼까, 아니면 다시 돌아가서 국도를 타고 갈까? 이 상황에서 산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 건 미아 되기 십상이고 야간에 국도를 타는 건 내가 꺼려하는 최후의 방법이다. 어떤 선택을 하던지 체력이 극한으로 떨어진 지금 이 시점에서는 뭐든 최악의 선택이다. 국토일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