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금요일 세번째 16:25 산에서 내려와서 이제 논밭길이다. 오늘 따라 서쪽 하늘이 붉은 색으로 빨리 물들어 가는 것 같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나는 자동차를 타고 국토일주 할 생각을 하지 않을까? 아니 자동차가 아니더라도 자전거를 타고 국토일주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왜 꼭 국토일주를 달려서 하려고 할까? 글쎄 달리는 게 좋아서라는 이유 말고 또 뭐가 있을까? 달리기는 세상 속을 들어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줄 지어 가는 개미, 풀잎에 매달린 달팽이, 꽃속에 숨어 있는 벌꿀, 수풀 언저리에서 나풀거리는 나비, 야채를 다듬고 있는 노부부, 주차문제로 언쟁하는 사람들, 음식점 안에서 바쁘게 서빙하고 있는 아줌마를 달리면서 볼 수 있다. 달리는 속도보다 더 ..
6월 10일 금요일 두번째 13:16 중국음식점에 들어가 제일 만만한 볶음밥을 시켜 먹고 울산 도심을 통과한다. 배 속에 뭐가 들어가니 그래도 좀 낫다. 햇볕이 좀 따갑지만 힘을 내서 가 본다. 한참을 걸어가도 울산 도심을 못 벗어난다. 내가 거의 기어가다시피 이동하는 것도 있지만 울산이 큰 도시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이제 태화강을 건너 울산 도심을 빠져나가 동해안까지 가로질러 정자해변을 지나 나아해변을 거쳐 봉길해변까지 다이렉트로 갈 계획이다. 13:27 할 수 있다고 주문을 외우면서 달리기를 몇 십 여 분, 다리를 하나 만났다. 다리 밑에 억세 밭이 말 그대로 천지를 뒤덮고 있었고, 그런 둑방길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 같아 현재 위치를 지도앱으로 살펴보니 명촌대교다. 아..
6월 10일 금요일. 국토일주 열흘날, 동해안을 달려 경주까지 목표경로: 울산터미날-울산 북구 정자항(20km)–경북 경주시 봉길해수욕장(20km) 총 40km 6월 10일 금요일 첫번째 내가 서브쓰리를 할 수 있을까? 남의 이야기같았던 서브쓰리가 이제 손만 뻗으면 닿을 것처럼 느껴진다. 마라톤 첫 풀 코스를 도전한지 1년여가 지나면서 마라톤 기량도 일취월장을 하고 있다. 꿈만 같았던 풀코스 4시간 이내를 뜻하는 서브4를 한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서브포를 넘어서 서브쓰리를 꿈꾸다니! 거의 매일 카페에 훈련일지를 올리고 카페회원들끼리 서로 응원댓글을 달아주면서 훈련량은 다달이 늘어나만 가고 있다. 조금씩 기량이 늘어나는 것이 눈에 뻔히 보이니 점점 욕심을 부리게 되고 이는 부상으로 이어지곤 했..
6월 9일 목요일 네번째 19:56 지도앱을 보니 울산에는 입성한 것 같다. 한참 몇 시간을 이야기하며 가고 있는데 어느새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아니 시간이 벌써 저녁 8시가 되었다니. 한주가 예약한 울산발 서울행 버스시간은 저녁 9시. 오늘의 목표지인 온양읍까지 약 5킬로미터를 남겨두고 해가 떨어진다. 한주는 온양읍에 도착하고 나서도 택시를 타고 울산까지 가야 한다. 아주 애매한 시간이다. 체력이 남은 상태라면 달려서 충분히 갈 수 있겠지만 지금은 걷는 것도 힘든 데다가 주변에는 앞 뒤로 국도만 끝없이 이어져 있다. 택시를 탈 수도 부를 수도 없는 위치이다. 도로 한 가운데에서 또 이런 상황을 맞이했다. 한주는 나만 믿고 가는 것 같다. 점점 어둠이 주변을 잠식해 가고 있다. 일단 미리 야간주 복장..
6월 9일 목요일 세번째 오른 발목을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발목에서 시작한 통증이 온 몸으로 번져가고 있다. 한걸음 한걸음 디딜때마다 수 천개의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다. 해는 이제 중천에서 살짝 옆으로 비껴나가고 있지만 그 열기는 점점더 강해지고 있다. 한주가 옆에서 잘 따라 준다. 아마 혼자서는 또 바닥에 누워버렸으리라. 15:05 오후 3시가 되어서 기장읍에 도착했다. 오늘 하루 지금까지 약 3시간 동안 15킬로미터 이동한 셈이다. 발목과 땡볕과의 싸움이다. 부산의 햇볕에 온 몸이 통구이가 되는 느낌이다. 땡볕도 이런 땡볕이 없다. 15:15 이제는 정말 안되겠다. 발목통증을 참다 참다 도저히 못 참고 한주한테 한의원을 찾아달라고 했다. 사실 가만히 서서 지탱할 힘도 없는 상태다. 한의원은 도..
6월 9일 목요일 두번째 09:43 일단 둘 다 아침을 안 먹은 관계로 근처 맛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부산에 오면 국밥을 시켜야 한다는 어느 회원의 말대로 국밥 집을 찾는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죄다 국밥집 천국이다. 대체 어떻길래 부산가면 국밥을 먹으라고 다들 그런가 싶어 음식 나오자 마자 후후 불어서 한 숟갈 떠보니, 아니 이 맛은! 돼지사골육수의 깊은 맛이 크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난다. 외관으로 보기엔 설렁탕보다는 맑은 국물이 연한 것 같은데 설렁탕이 깔꼼한 맛이라면 여기 부산돼지국밥은 투박하고 속깊은 풍성한 맛이다. 이 맛에 먹는 거구나. 시장이 반찬이라고 둘 다 돼지국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그리고는 한주가 나를 위해 사왔다며 가방에서 주저리 주저리 뭔가를 막 꺼내놓는다. 붙이는 파스랑 미..
6월 9일 목요일, 국토일주 아흐렛날, 부산 해운대에서 울산까지 목표경로: 부산역–부산 기장읍(30km)-울산 울주군 온양읍(25km) 총 55km 6월 9일 목요일 첫번째 05:20 기차를 놓칠까 봐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새벽 5시에 짐 챙겨 나와 5시 25분 기차를 탔다. 기차 안에서 자려했으나 오히려 눈이 말똥말똥하다. 7시 14분에 오송에 도착해서 7시 33분에 출발하는 부산행으로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어차피 잠을 푹 잘 수도 없다. 지금 나는 다시 오송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국토일주 경로에 충청북도가 없다고 기차 타고 충청북도를 찍고 가는구나. 어떻게 목포에서 부산까지 한번에 가는 열차가 없다니! 며칠 동안 죽을 고생하며 달려온 구간을 단 몇 시간 만에 다시 거슬러 올라가고..
를 마치고 나니, 숨이 찹니다. 서울 경기 충북 충남 전북 전남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서쪽 길은 논과 밭, 강둑, 산길의 반복이었지요. 원래는 ㅁ 자로 한반도 남쪽을 한 바퀴 달릴 계획이었으나 5일차에 서쪽종주, 동쪽종주로 변경했습니다. 제 자신을 너무 과신했고, 예상보다 주로가 안 좋았던 이유였습니다. 직전 1년 동안 달린 거리가 고작 몇 십킬로미터에 불과한데 국토일주 첫 날에 70킬로미터를 이동해버렸으니 부상을 안 입는 게 이상한 거지요. 이제 동쪽을 달렸던 이야기를 쓸 차례입니다. 서쪽은 혼자서 고분분투하는 이야기였다면 동쪽은 마라톤 동료들이 합류해서 해안선을 따라 동반주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저도 기대가 되네요. 그 전에 잠깐 쉬어가는 페이지로 히말라야 야명조(夜鳴鳥) 이야기를 하나 드리려 ..
6월 8일 수요일, 열 번째 곤궁이통(困窮而通), 궁(窮)하면 통(通)한다고 했다. 10킬로미터 대회에서 50분 이내 기록을 낸 후 마라톤에 집중하면서 관련 책자와 사이트 그리고 우리나라 마라톤 국가대표를 지냈던 선수들을 찾아 다니면서 마라톤 훈련에 대해 배우고 그대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마추어가 열정을 갖고 마라톤을 하고자 하는 모습에 기꺼이 본인의 시간을 내주고 훈련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장거리를 뛰기 위해서는 지구력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거지만 기록을 올리려면 단거리 스피드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러기 위한 첫 번째 목표는 1킬로미터를 4분 이내로 뛸 수 있는 근력을 갖추는 것. 이제까지의 숏컷주법이 아닌 스트라이즈주법으로 골반을 이용해서 보폭을 넓게 달리는 훈련과 뒤꿈치 착..
6월 8일 수요일, 아홉 번째 18:20 몇 분이나 지났을까. 어떤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 와서 정신이 들었다. 깜짝 놀라 눈을 뜨고 바라 보니 새마을모자를 쓴 농부아저씨다. 왜 그렇게 누워있냐고 물어 본다. 제가 국토일주를 하는데 지금 힘도 들고 배가 아픈데 화장실도 없고 지금 상황이 이렇습니다, 말을 하니 자기를 따라 오란다. 십 여 미터 가보니 무슨 사슴 농장 같은게 있는데 그 뒤 작은 집을 가리키면서 들어가면 화장실이 있으니까 볼 일을 보라고 한다. 감사합니다. 납죽 절하고 들어갔더니 이런! 화장실에 선풍기도 있고 변기에는 비데도 설치되어 있다. 할렐루야. 정말 충분히 볼 일을 본 다음 나오니 아저씨가 음료수도 하나 건네준다. 힘이 난다. 복 받으시라는 이 말을, 나오면서 두 번은 했다. 하늘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