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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4일 토요일. 국토일주 나흗날, 금강따라 전라도를 향하여 

 

목표경로: 청양군 청남초중학교–부여-논산시 강경읍(30km)-전북 익산시청(30km) 60km

 

6월 4일 토요일, 첫 번째

 

06:10 몸이 힘들어서 그런 건지 악몽을 꾸었다. 국토일주를 하면서 육체적으로 힘들 때 마다 과거 내 인생 가장 힘들었던 그 날로 돌아가곤 한다. 마치 지난 십 여 년 동안 마음 한 켠에 무겁게 짓누르던 기억들을 마지막으로 남김없이 꺼내어 날려 보내려는 듯이 말이다.

어제 꿈이 선명하다. 경제적 파산선고에 이어 폐결핵은 내게 정신적 피폐함과 육체적 굴욕감을 가져왔다. 병은 대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폐결핵에 걸리고 몇 개월이 지나 해가 바뀐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새하얀 눈이 펄펄 내리던 정초, 세상이 모두 잠든 시간 마루에 홀로 앉아 있다가 내가 나 스스로 가입시킨 보험증권을 찾아 본 순간 나는 정신 나간 생각을 하고 말았다. 사망보험금만 5억 원에 달했다. 그래 5억원이었다.

 

06:20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제 그만 생각하자. 과거 악몽 같던 기억들은 이제 잊어 버리자.

새벽에 소스라쳐 눈떴을 때만 해도 몸이 안 움직이는 것 같아 점심 때까지 쉴 생각이었지만 그냥 서둘러 나왔다. 다리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만신창이긴 하지만 몇 시간 더 쉰다고 더 나아질 것도 없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옷 입은 채로 널 부러져 있고 핸드폰과 가민 충전도 안 해 놓고, 그러고 보니 가민 GPS어제 밤에 휴식 중에 멈춤을 해놓고는 다시 켜지도 않은 듯 하다. 제길, 어제 이동한 내 거리 어쩔 꺼야. 키네시오 테이프도 다 썼다. 그나마 테이핑을 하며 버티고 있었는데 약국에 만일 없으면 낭패다. 키네시오 테이프가 다 떨어졌다는 내용을 인터넷으로 공유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게시글을 본 한주가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보내겠다고 댓글을 달았다. 고맙다.

 

07:00 콜택시를 불렀다. 다시 청남 초중학교까지 뛰어서 나는 못 간다. 어제 내가 어떻게 갔던 길인데 그 길을 다시 또 어떻게 뛰어 간 말인가. 갔던 길을 또 뛰어 가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다행히도 여관에서 택시를 불러 주었다.

 

07:14 바람 부는 것이 좀 선선하다. 오늘은 날씨가 도와줄런지. 택시 운전사 아저씨는 달려서 국토일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본인이 흥분해서는 가는 내내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하시면서 내 정신을 쏙 빼놓으신다. 오늘 최종 목적지는 어디냐는 물음에 익산이라고 했더니 거기까지 60킬로미터는 훨씬 넘을 거라면서 어떻게 매일 하루에 60킬로미터씩 달릴 수 있냐고 나보고 미쳤다고 한다. 그러시면서 본인이 이 쪽을 잘 안다고 가는 길을 조목 조목 설명해 주신다. 여기가 청양군 청남면인데 왕진교를 건너면 부여군 부여읍이고, 익산을 가려면 강경까지 가야 하는데 부여군은 죄다 논밭이라 쉴 곳이 없고 그렇지 않으면 산길이라 가는 길이 만만치 않을 거라고 침을 튀기며 설명을 하신다.

 

07:17 한참 가다 보니 어라, 택시 창 밖으로 강이 보인다.

, 아저씨 지금 다리 건너고 있는 거에요?

그렇단다. 왕진교는 사람이 건너기 힘들다고 자기가 건네다 준단다. 다리 건너는 거리는 돈 안 받겠단다. 맙소사, 안 된다고 안 된다고 악을 써도 아저씨는 정말 큰 선심 쓰는 양, 국토일주 하면서 불우아동 후원도 하는데 자기가 이런 거라도 도움을 줘야 하지 않겠냐며 되려 화내는 나를 무슨 조카 대하듯 어르며 내려다 주고는 쌩하니 가버렸다. 청남 초중학교를 지나쳐서 왕진교 이남까지 택시 타고 와 버렸다. 지도 앱을 켜보니 현재 위치가 부여읍 저석리다. 대략 10여 킬로미터는 점프를 한 셈이 되었다. 에이 모르겠다. 이렇게 된 거 일단 고고다.

 

07:20 조금 걸어 가는데 비가 후두둑 떨어진다. 이런 제길, 오늘 날씨가 좀 선선하다 싶어 내심 기대했는데 비가 내릴 줄이야. , 이 정도 이슬비는 달리기에 괜찮다. 방풍자켓을 꺼내 입고 다시 달려 간다. 자켓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발자국 소리와 묘하게 어울리며 하나의 교황곡을 만들어 낸다. 통풍성이 좋은 알트라 신발이 빗물 덕분에 축축해 진다.

 

 

07:23 부여 송곡마을을 지난다. 자그마한 마을이 군데 군데 떨어져 있다.

 

 

 부여라, 백제 최후의 도읍지가 있었던 부여가 아닌가? 금강을 따라 부여읍 쪽으로 가면 백제를 정벌하러 온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백마를 미끼로 금강의 용을 잡았다는 백마강을 볼 수 있으련만, 지도를 보니 금강을 따라 가면 너무 돈다. 송곡리를 통과해서 현북리까지 가로질러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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