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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 토요일, 두 번째

 

 

09:00 국도를 따라 가다가 빠져 나와서 드넓은 벌판 길로 들어 섰다. 뛰다 걷다 뛰다 걷다 반복하기를 수십 차례다. 지친다. 가로질러 가는 건 계속 길을 찾아 가야 하기 때문에 정신력이 많이 소모된다. 가다 보니 표지판이 하나 보인다.

 

공사 중 50미터 앞.

 

 

뭐지 이건? 설마 하면서 가보니 아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국토일주하면서 제일 싫은 것이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일이다. 설마 했는데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 두 개가단호함이 서려있는 문구와 함께 길 한 가운데 떡 하니 버티고 서있다.

위험! 펌프장 공사중으로 통행을 차단하오니 우회하여 주십시오.

 

오른쪽은 표현이 그나마 조금 부드러웠다.

공사 중 출입금지. 통행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우회하라니, 말이 되는가. 다른 길로 가려면 여기까지 왔던 길을 다시 5킬로미터는 돌아 가야 나오는데 나는 돌아갈 수 없다.

애써 무시하고 200미터쯤 지나쳐 가다 보니 어라 길이 정말 끊겼다. 길은 온데 간데 없고 펌프장이 떡 하니 자리잡고 있으니 어찌하란 말인가.미치고 팔짝 뛰겠다. 아니 미치고 주저 앉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펌프장 뒤 쪽에서 좀 누워 쉬어야겠다. 끊어질 것 같은 다리를 끌고 펌프장 뒤로 돌아가 보니 언덕 위로 무슨 샛길이 하나 나있다. 샛길을 따라 올라 가니 무슨 둑이 있고 기어서 둑 위로 올라 가보니,

 

!마치 비단을 펼쳐 놓은 것만 같은 유유자적한 금강의 잔잔한 흐름이여!드디어 부여를 가로질러 오천년의 세월을 굽이 굽이 흐르는 금강을 만났구나. 그 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라이더들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국토종주 금강 자전거길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막힌 길 넘어 새로운 길을 찾은 셈이 되었다. 한참을 감상에 젖어 쉬이 주변을 바라보다가 저 멀리 안내판에 눈길이 멎었다. 가까이 가보니 이 곳이 부여 나성이라고 알려 준다. , 내가 올라온 곳이 둑이 아니라 토성이었구나. 국문을 읽어 보니 이와 같이 쓰여져 있었다.

 

나성(羅城)은 백제(百濟)의 수도(首都) 사비를 지키는 외곽성으로 웅진(熊津)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긴 538년을 전후해서 축도된 것이다. 이 성은 토축(土築)이 되어 형태를 찾기 어려우나 동쪽으로 중략- 남문지까지 수로(水路)로 연결된 길이 약 8km의 토성(土城)이다. 성 외벽은 급경사를 이루고 성 내벽은 완만하여 성 위에는 말을 달릴 수 있을 만한 길이 있고 곳곳에 초소가 있었다. 서남쪽에는 수로가 있고 백마강이 있어 자연적인 방어 기능을 했으므로 성을 쌓지 않았는지 지금은 성벽이 없다.

 

 

 

흠 그래, 천오백 년 전 백제가 수도를 이 토성을 만들어 보호했다 이거지. 난 이 길로 국토일주를 하리라. 말로만 듣던 금강 종주 자전거길을 이렇게 달려서 갈 수 있게 되었구나. 이 자전거길은 군산에서 대청댐까지 무려 146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하니 라이딩하는 사람들한테는 거의 성지와 같은 길일 것이다. 굽이쳐 흐르는 금강의 절경이 장관이다.

 

금강은 전북 장수에서 시작해서 대전 세종 공주 부여 강경 군산 등의 도시를 경유하는 400킬로미터의 긴 강이라고 한다. 중간 중간 녹조가 찬 강변도 보인다. 강폭이 무지 넓다. 어쩌면 한강보다 더 넓어도 보인다. 무엇보다도 금강 양 옆으로 펼쳐진 들판이 광활하기만 하다. 강 하면 한강만 보던 서울촌놈한테 이런 들판을 날개로 갖고 있는 강을 본다는 건 정말이지 다른 나라에 온 느낌이다. 저 알록달록한 꽃밭의 향연이여. 몇 시간 동안 논밭길과 산길을 이동하면서 사람을 보지 못했는데 종주길에서는 자전거 탄 사람들을 많이 본다. 일명 라이더들이다. 동호회에서 왔는지 수 명이 재잘거리며 옆을 쌩 하니 지나간다. 간혹 등에 붙어 있는 부착물을 보고 파이팅 외쳐주는 사람들도 있다.

 

 

10:00 시계는 오전 10시를 알려주고 있다. 부슬 부슬 내리던 비는 조금씩 강약을 조절하면서 애간장 타게 내린다. 그래 좋다. 이 정도는 달리기 딱 좋은 날씨다. 하지만 날씨는 상관없이 정말 우려했던 일이 생겼다.2일차 땡볕주를 하며 더위를 먹을 때 핸드폰도 같이 더위를 먹었던 것이 틀림없다. 가끔 상대방 말하는 게 들리지 않더니, 오늘 4일차가 되어 비를 좀 맞고 나서는 스스로 온오프를 반복한다. 핸드폰이 안켜질 때마다 걱정이 밀려온다. 핸드폰지도를 볼 수 없어 이제는잘라간 지도를 보면서 사람이 보일 때마다 물어물어 가야 한다. 정말 진퇴가 양난이다. 간혹 핸드폰이 켜졌을 때 빨리 위치 확인하고 거리 확인하고 SNS와 카페 게시글에 달린 댓글을 확인한다. 게시글 하나에 거의 백 여 개의 응원 댓글이 달린다.정오 경 도착 예정인 목적지가 강경읍이 될 것이라고 알린 게시글에 그 지역은 황산식당이 유명하니 꼭 들리라는 댓글이 달렸다. 동갑인 맨발의 댓글이다. 어휴, 체력이 바닥이라 식당만 보이면 아무데가 가야지 지금 맛집 가릴 상황이 아니다.

 댓글을 또 보다 보니 언뜻 점심식사 같이 하자는 내용이 보인다. 동탄에 산다는 오래달리기님이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어디 있을 줄 어떻게 알고 나랑 약속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식사를 같이 하신다는 건지, 그러고 보니 문자도 와있다. 모르겠다. 연락 오겠지.

 

 

 

11:36금강의 절경을 감상하며 한참을 걷다 뛰다 하다 보니 표지판이 하나 보인다. 국토종주 금강자전거길. 여기서부터는 충청남도 논산시란다. 이제 논산 입성이다.

 

몸 상태는 이제 더 이상 최악이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지같다. 핸드폰도 맛이 가고 내 정신력도 맛이 갔다. 가민 GPS 켜는 것을 자꾸 잊는다. 한참가다가 아차, 생각나곤 한다.

 

 

이슬비 내리는 금강의 절경은 황홀하기 그지 없으나 금강종주 자전거 길은 휴게소도 없고 매점도 없고 음식점도 없고 사람도 없고 마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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